[사설] 대북지원 속도조절 요구한 주한 미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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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북한의 체제 변화를 위한 한국의 노력은 지지하지만 대북 경제협력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에 이전되는 기술이 북한의 군사력을 증강하는 데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대사로선 이례적으로 북한에 대한 강경입장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위폐를 만드는 북한은 범죄정권'이라는 자신의 발언이 논란을 빚어도 "할 말을 한 것" 이라고 일축했다. 북한 인권 국제대회에 참석, "북한 인권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행동할 시기가 왔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이런 그가 남북경협에 제동을 거는 언급까지 한 것이다.

그의 발언이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대북 정책기조에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측면에서다. 9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공동성명 타결 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북한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대북 경수로 제공 논의'를 수용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러나 그 이후엔 달라졌다. 대량살상무기 거래와 관련 있다며 몇몇 북한 기업의 자산을 동결하는 등 대북 강경입장을 노골적으로 보였다.

한.미는 한국의 대북 지원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미국은 이런 지원이 북한 독재체제의 강화에 이용된다고 보는 반면, 우리 정부는 이것을 '평화비용'으로 간주해 갈등을 빚어왔기 때문이다. 버시바우 대사가 이번에 남북경협을 문제 삼은 것은 미국이 설정한 외교정책의 원칙에 입각해 한국에도 '할말은 하겠다'는 신호탄으로 분석된다.

한.미관계는 현재 미국 인권특사의 면담 요청을 통일.외교부 장관이 거부하는가 하면 공중조기경보기 도입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이 나오는 등 가뜩이나 삐걱거리고 있다. 이런 마당에 미국의 대한(對韓) 개입 정책이 본격화될 경우 양국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은 자명하다. 정부는 이러한 미국의 입장에 어떻게 대응할지, 향후 한.미동맹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심사숙고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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