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대통령의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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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미국의 성공한 대통령 중 한명이다. 1990년대 미국의 경제호황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클린턴의 업적이었다.

임기 말의 르윈스키 스캔들을 제외하고 재임 8년 동안 클린턴에게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집권 초반의 8개월이었다.

시골 중의 시골인 아칸소 주지사 출신에다 워싱턴 정가의 경험이 전무한 40대 대통령에게 의회와 언론은 처음부터 밀월 기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클린턴이 당시 처했던 환경은 그와 같은 나이인 노무현 대통령의 지금 상황과 닮은 점이 많다.

우선 빈약한 정치적 기반이다. 클린턴이 소속한 민주당은 대선의 해에 있었던 하원선거에서 10석을 잃었고, 대선 직후 실시된 상원 보궐선거에서도 패배했다.

오랫동안 백악관 주인이었던 공화당 의원들은 클린턴을 정권 찬탈자처럼 생각했고, 그의 정통성을 부인하려 했다.

클린턴은 또 전통적 이념을 중시하는 민주당 주류의 힘을 무시했다. 그가 의회에서 여당의 지지조차 얻어내기 힘들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메이저 언론들은 대통령으로서 클린턴의 자질을 신뢰하지 않았고, 사사건건 비판적이었다. 클린턴의 젊은 참모들을 "역사상 가장 당파적인 꼬마들"이라고 비난했다.

이 시기에 백악관 참모로 합류한 데이비드 거건은 "그때 클린턴은 종종 기운도 없고, 참을성도 없으며 공격적인 데다 판단력이 흐려질 정도로 지쳐 있었다"('CEO대통령의 7가지 리더십')고 묘사했다.

클린턴이 수렁에서 빠져나와 '화려한 부활'을 한 것은 만사 제쳐놓고 8개월 만에 가진 긴 휴가를 통해서였다. 충분한 수면과 골프와 독서가 그를 집중력 강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았다.

집권 공신인 30대 참모들을 2선으로 물리고 워싱턴 정치에 밝은 공화당 사람 거건을 전격 기용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거건 등의 강력한 조언으로 클린턴은 주변환경에 대한 과민반응을 자제했다.

盧대통령이 안팎으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사상 가장 짧은 시기에 대통령으로 변신한 그에겐 세상을 조용히 응시할 휴식이 필요할지 모른다. 주변에 노련한 참모들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