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페이퍼컴퍼니 편법투자에 680억원 과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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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이 조세회피 목적으로 서류상으로만 회사(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독일계 투자회사에 680억원의 법인세를 추징하게 됐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주식·부동산 시장에서 이익을 볼 기회가 많아지면서 편법적으로 투자수익을 올리는 외국계 자본의 투자행태에 경종을 울리게 된 것으로 국세청은 보고 있다.

14일 국세청에 따르면 독일계 투자펀드 TMW펀드가 만든 ‘종이회사’인 TMW한솔은 국내에 타이거유동화전문 유한회사를 설립해 2003년 초 서울 역삼동에서 대형 빌딩을 사들였다. 이 회사는 2006∼2008년 빌딩에서 거둬들인 임대수익 3020억원을 TMW 한솔에 배당하면서 한·독 조세조약에 따라 세율 5%를 적용받아 법인세 137억원을 납부했다.

이에 관할 역삼세무서는 2011년 3월 배당소득을 실질적으로 수령하는 TMW펀드가 한·독조세조약에 따른 낮은 세율을 적용받기 위해 TMW한솔을 설립했을 것이란 점을 뒤늦게 알아챘다. 역삼세무서는 곧바로 타이거유동화전문에 법인세법상 세율 25%를 적용한 세금을 물렸다. 이를 통해 법인세 679억원이 추가로 부과됐다. 독일펀드가 직접 국내에 투자해 배당받을 때는 한·독 조세조약을 적용받지 못하거나 25% 또는 15%의 고세율을 적용받게 돼 있다는 근거에 따라서다.

이에 반발해 타이거유동화전문은 역삼세무서를 상대로 과세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TMW한솔이 TMW펀드와 독립된 주체로 배당소득을 실질적으로 받기 때문에 조세조약에 따른 5%의 세율을 적용받는 게 합당하다고 판단해 타이거유동화전문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TMW한솔은 발행주식이나 배당소득을 지배·관리할 능력이 없고 TMW펀드가 TMW한솔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해 조세조약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원고 패소 취지로 판결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국세청 관계자는 “조세조약을 악용하기 위해 만든 ‘종이회사’가 조세조약의 혜택을 편법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이라며 “유사 조세소송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이 국내에 서류상으로만 요건을 갖춘 회사를 내세워 이익을 보는 경우가 속출했는데 이번 판결로 편법적 투자에 대해서는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동호 선임기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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