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있는책읽기] '만약 세상이 … 라면' 꼬리를 무는 생각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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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우리는 여러 가지 가능한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 흐린 날이면 현관 앞에 서서 '우산을 들고 나가는 세계'와 '들고 나가지 않는 세계'를 생각해본다. 시험 보기 전날 책상 앞에 앉으면 '시험이 없는 세계'와 '뭐든지 단번에 외워지는 세계'를 상상한다. 이런 생각을 할 때 항상 문장 맨 앞에 붙는 어휘가 바로 '만약'이다.

'만약'(사라 페리 글.그림, 사랑이)은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는 책이다. '만약 물고기가 나뭇잎이라면, 나비가 옷이라면, 달이 사각형이라면, 고양이가 하늘을 난다면' 같은 재미있는 물음으로부터 '만약 발가락이 치아라면, 치약이 애벌레라면' 같은 다소 느물거리는 물음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작가가 던지는 기상천외한 질문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그 가능한 세계의 모습을 요모조모 상상해보자. 열 개의 발가락을 옴죽거려 캐러멜을 꾹꾹 씹고 발톱 위에 푸른 애벌레를 짜 넣은 뒤 쓱쓱 이를 닦아내는 바로 그런 세계를.

'만약'으로 시작하는 물음에 풍부하게 답하는 연습은 글쓰기의 창의성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익숙한 질서가 아닌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구상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가능한 모든 세계에서 결코 변하지 않는 확실한 것이 있을까? 어떤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은 무엇일까? 논리적으로 가능한 것과 현실에서 물리적으로 가능한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면 우리는 세계와 이웃과 자연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김지은(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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