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옴부즈맨칼럼

'법은 내친구' 기획 실용적이고 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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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잠깐이라도 눈 내리는 바다를 마주할 때처럼 가슴 뭉클했던 최근 기사는 '루게릭 눈으로 쓰다' '위아자 나눔 장터 소식'이었다. 특히 누구든 자신의 운명이 어찌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장 절박하고 극단적인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박승일씨를 통해 병으로 소외된 이들의 고통을 생각하고 인생의 의미를 나눌 수 있었던 뜻깊은 기회였다. 무척 실용적인 기사로 '법은 내 친구'가 눈에 띄었다. 법하면 어렵고 머리 아프기 십상인데, 편안하게 다가온 기사였다. 그리고 지구의 운명을 좌우할 환경문제를 크게 다룰 때는 숨통이 트인다. 내 개인적 관심사도 있으나, 쑹화강 벤젠 오염만 해도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결국 한국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환경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자주 알려주었으면 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게 사랑의 이치이듯 중요한 문제는 자주 다뤄야 함께 고민하며 해결할 방법을 찾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잔소리 같더라도 중요한 건 색깔을 바꾸면서 크게 실려야 속이 후련해질 사람은 나뿐 아니리라. 그래야 세상일이 잘 풀릴 희망도 생기고, 각성을 거듭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렇게 오늘은 한 가지 문제를 집중해 얘기하기보다 전체적으로 훑어가는 식이지만,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기는 문화면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1990년대 말~2000년 초반의 문화면은 도발적이고 신선하고, 앞서간다는 인상이 강했다. 지금은 그때의 강한 느낌이 들지 않는 건 왜일까. 그만큼 경제나 사회 빅뉴스가 많아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일까. 우리 경제가 힘들어 책시장을 비롯한 전반적인 문화시장의 침체에서 비롯된 것일까.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11월 26자 북코너는 전면광고란과 기사란의 배치가 균형이 잡히지 않고, 안정감이 떨어지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제일 시원하게 시선을 끄는 사설란에 비해 더욱 그렇다. 사실 구독료만으로 신문사를 경영한다면 적자일 텐데, 어떤 미디어든 광고로 수익을 올린다는 면에서 어쩔 수 없는 배치고, 광고 스타일 자체가 신문기사 식으로 나가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배치를 바꾸면 조금 낫지 않을까 한다.

"가장 많이 산 사람은 오래 산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생을 느낀 사람"이라고 한 루소의 말이 떠오른다. 그 다양하고 많은 생의 느낌을 간직하게끔 신문의 역할도 크다는 면에서, 또한 문화전쟁 시대란 점에서 최전방에 위치한 신문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다.

신현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