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퇴임 뒤 변호사 개업 않겠다"는 맹세를 주목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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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국회청문회에서 “대법관이 되면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민과 국회 인사청문위원에 대한 맹세”라고 했다. ‘퇴임 뒤 변호사 개업을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약을 해달라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지만 그의 이날 발언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법조계에선 “공개석상에서 나온 그의 이례적인 다짐이 전관예우라는 낡은 관행을 깨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의 필수 문답코스가 될 것이란 예상에서다.

 지난달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여부를 놓고 촉발된 전관예우 논란은 법조계의 고질적 병폐다. 최고법원의 최고법관 자리를 6년간 누렸던 사람이 변호사로 변신해 1년에 10억원 이상의 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누가 봐도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대법관 출신은 로펌 등에서 월 1억원가량의 보수를 받는다. 대법원 사건의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려주는 이른바 ‘도장 값’으로 한 번에 수천만원을 받기도 한다. 이를 전문성에 대한 대가로 볼 수 있을까. ‘깨끗한 손’의 상징이었던 대법관 출신 총리 후보자가 불과 10개월 만에 27억원의 매출을 올린 행위는 단순히 전관예우로 볼 수 없다. ‘전관비리’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갖는다.

 전직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은 법률서비스 시장의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부당하게 과도한 수임료를 부담 지우고 있다. 법률시장을 왜곡시키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가속화시킬 뿐이다. 또 사법부 구성원들에게는 사법정의의 가치를 훼손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국가권력의 사유화를 통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방해물에 불과한 것이다.

 사법부 일각에선 “대법관 출신이라는 이유로 변호사 개업을 못하게 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를 막는 초법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사법부의 공정성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팔짱만 낀 채 법리 공방만 벌일 것인가. 이번 기회에 대법원의 자발적인 법적·제도적 대안 마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