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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전환대출' 안심하긴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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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민
정경민 기자 중앙일보
정경민
경제부장

가계 빚, 그중에서도 주택담보대출이 무서운 건 집이 금융회사에 ‘볼모’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채무자가 빚을 못 갚겠다며 만세를 부르면 금융회사는 담보로 잡은 집을 경매에 부친다. 평소엔 괜찮아도 한꺼번에 쏟아지면 집값을 추락시킨다. 그 여파로 대출금보다 싸진 ‘깡통주택’이 속출한다. 화들짝 놀란 은행이 대출금 회수 버튼을 누르는 순간 ‘만세’ 행렬은 핵분열을 일으킨다. 깡통주택이 경매시장을 뒤덮는다. 집값은 수직 낙하한다. 이판사판 궁지에 몰린 은행은 기업을 물어뜯기 시작한다. 2008년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세계 경제를 초토화시키는 데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자고로 빚의 아킬레스건은 금리다. 지난해 8월 정부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한 뒤 주택담보대출이 빛의 속도로 늘었어도 끄떡 없는 건 단군 이래 최저금리 덕분이다. 그러나 태평성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미국은 늦어도 9월께 금리를 올릴 태세다. 달러 엑소더스(대탈출)를 막자면 우리도 금리를 따라 올릴 수밖에 없다. 한데 현재 은행 주택담보대출 중 변동금리 비중은 70%가 넘는다. 정부가 변동금리 일시상환 대출을 고정금리 원금 분할상환 대출로 갈아타는 안심전환대출을 내놓은 까닭이다. 독감 주사처럼 금리 인상 전에 미리 면역주사를 놓은 셈이다.

 그러나 안심하긴 이르다. 금리 인상에 면역이 생긴 안심전환대출은 전체 은행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의 13%밖에 안 된다. 농·수·축·신협과 저축은행의 95조원, 보험사의 30조원 주택담보대출은 손도 못 댔다. 신규 대출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더구나 이번에 금리 인상 예방주사를 맞은 대출자는 그나마 건강한 축이었다. 최근 6개월 내 30일 이상 연체한 적이 없고 이자와 함께 원금까지 갚아나갈 여력이 있는 대출자다. 안심전환대출 2차 신청액이 14조원에 그친 건 그만큼 허약한 대출자가 많다는 방증이다. 안심전환대출이 1976년 재형저축 이래 최고의 정책금융 흥행작이라 해도 가계 빚 폭탄의 뇌관을 해체하는 덴 역부족인 이유다.

 요 몇 년 가파르게 늘어난 주택담보대출은 크게 두 부류다. 전셋값 폭등을 견디다 못한 내 집 마련 수요가 으뜸이다. 이는 금리가 올라도 만세 행렬에 동참할 확률이 크지 않다. 이와 달리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생활비나 사업자금으로 쓴 사람은 ‘관심’ 대출자다. 이는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도 확인된다. 2010~2014년 소득 하위 20% 계층의 신용대출은 56.9% 감소한 반면 주택담보대출은 78.3% 늘었다. 은행이 저소득자에 대한 신용대출 고삐를 죄자 LTV·DTI 규제가 느슨했던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이 부풀어오르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는 얘기다. LTV·DTI 규제가 완화된 지난해 8월 이후엔 이런 추세가 가속화됐다.

 제2금융권 저소득 대출자가 담보로 잡힌 집은 주로 연립·다세대이거나 단독 주택이다. 그러나 한꺼번에 쏟아지면 이 역시 가계 빚 폭탄의 뇌관이 되기에 충분한 휘발성과 폭발력을 지녔다. 다만 제2금융권은 안심전환대출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LTV·DTI 비율이 은행보다 높고 채무자가 이자와 원금을 함께 갚아나갈 여력이 없어서다. 기존 ‘바꿔드림론’ ‘햇살론’ 같은 제2금융권용 갈아타기 상품이 흥행에 실패한 이유다.

 길은 두 갈래다. 빚을 잘 갚아왔거나 갚을 의지가 있는 제2금융권 대출자는 어떤 식으로든 금리 인상 예방주사를 맞히는 게 싸게 먹힌다. 이마저도 안 되는 대출자는 금리가 오르면 어차피 만세를 부른다. 다만 이들이 담보로 잡힌 집이 한꺼번에 경매시장으로 쏟아지지 않도록 둑을 쌓아둬야 한다. 산불이 번지기 전 맞불을 놓듯 전 금융회사와 정부가 갹출해 ‘주택시장안정기금’이라도 만들어 한계선상의 대출은 미리 정리하란 얘기다. 왜 민간 금융회사의 팔을 비트냐고? 한가한 소리 집어치우라. 가계 빚 폭탄이 터지면 제일 먼저 나가떨어질 게 금융회사다. 지금 호미로 막을 걸 그땐 불도저로도 감당 못한다.

정경민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