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노래로 배웠네]<12>아마도이자람밴드 ‘우아하게’ - 당신의 ‘실연송’은 무엇인가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저는 오늘 당신과 헤어졌습니다. 헤어지자고 말한 건 저지만, 그렇게 만든 건 당신입니다. 한동안 멍한 상태가 계속됐습니다. 침대 위에 달팽이처럼 누웠습니다. 달팽이처럼 꿈틀거리며 눈물을 흘립니다. 이 눈물이 미련인지 후련함인지 그리움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배게가 축축해질 정도로 울었더니 배가 고픕니다. 이 죽일 놈의 식욕. 실연 당하면 살이 빠진다는데, 그건 대학가면 살이 빠진다는 것과 똑같은 억측입니다. 사자 머리를 하고 주방으로 나갑니다. 라면을 끓입니다. 계란도 풀고 파도 썰어 넣었습니다. 먹습니다. 후루룩. 또 눈물이 납니다. 면발이 너무 뜨겁습니다. 혓바닥이 데였습니다. 남자친구는 라면을 참 잘 끓였습니다. 그가 그립다기보다 그의 라면이 그립습니다. 저도 울고 라면도 웁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동네 친구 두 명이 저를 위로하겠다며 집 앞으로 찾아왔습니다. 사자 머리에 간신히 물을 축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소주를 먹기로 했습니다. 실연에는 소주입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걔 마음에 안 들었어.”
“이제 너에게 수많은 가능성이 열린거야.”

친구들이 열심히 위로를 합니다. 쥐어짜는 것도 느껴지지만 고맙습니다. 사랑은 영원할 수 없으나 우정은 영원할 수 있습니다. 술이 취하니 슬슬 부아가 치밉니다. ‘아마도이자람밴드’의 ‘우아하게’(2013)가 떠오릅니다.

우아하게 행복을 바라지 않을게요
그다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아요
하는 일 다 잘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좋은 사람 만나라는 새빨간 거짓말 내 입으로 내뱉진 않겠어요
날 버리고 간사람 자꾸 궁금한 사람
생각할수록 얄미운 사람

우린 왜 헤어질 수밖에 없었을까요. 우리의 사랑은 모세의 기적처럼 시작했으나 흔하디 흔한 연애의 종말로 기록될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이 먼저 식은 이유를 누구도 설명할 수 없기에 답답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당신을 증오하는 일 뿐입니다. 이자람은 이렇게 증오합니다

고상하게 말없이 보내주지 않을래요
기회 닿는 대로 많이 험담하고 싶어요
어디 가서 넘어졌으면 좋겠기도 하네요
잘 보이려는 사람 앞에서 지퍼라도 열렸으면
속이 시원하기도 하겠네요

특히 앞지퍼는 꼭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술잔을 더 돌리니 또 다시 눈물이 납니다. “소주가 너무 달아. 어흐흐흑”. 감정 기복이 죽을 씁니다. 의문, 분노, 슬픔, 좌절, 억지 희망 그리고 다시 의문이 이어집니다. 이 감정의 쳇바퀴를 몇 번 정도 더 굴려야 당신을 잊을 수 있을까요. 다시 분노의 강도를 높힙니다.

길가다가 보도블럭에 넘어져라
커피 타다 바지에 쏟아져라
술 취해서 집에 가는 길 까먹어라
못된 여자 만나서 쩔쩔매라
엊그제 산 비싼 잠바 찢어져라
새로 산 스마트폰 망가져라
지하철에서 꼰대한테 혼나라

다음 날 부운 눈으로 출근을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당신을 그리워했다, 미워했다를 반복합니다. 당신의 모든 것이 내 몸에 삼겹살 냄새처럼 끈덕지게 들러 붙어있습니다. 페브리즈라도 뿌려 떼어내고 싶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좀 더 담담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아요. 이별에는 내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자람은 이렇게 노래를 마무리합니다.

이리 저리 망신 주는 상상을 해도
하나도 시원하지 않아
이리 저리 망신 주는 상상을 해도
하나도 시원하지 않아

우아한 이별이란 가능한 것일까요? 저는 생각합니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는 없습니다. 그저 견디고, 견딜 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것이니까요. 외롭습니다. 당신이 곁에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당신을 떼어내는 일이 온전히 내 몫이기에 외롭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잘 지내고 있나요.

발로차 기자 elegant@joongang.co.k*r

※기자 이름과 e메일 주소는 글 내용에 맞춰 허구로 만든 것입니다. 이 칼럼은 익명으로 게재됩니다. 필자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중 한 명입니다. 다양한 문화 콘텐트로 연애를 다루는 칼럼은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 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