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백, 발 딛는 도처가 살얼음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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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준결승 2국>
○·스 웨 9단 ●·김지석 9단

제13보(123~138)= 걷어차인 발뒤꿈치의 통증이 아찔하지만 손 따라 두기도 괴로운 곳. 124는 대마의 탄력을 확보하면서 중앙 흑의 영토 확장을 견제하는 최선의 수다.

 응수하기도 난처한 곳에서 어설프게 얼쩡거리다가 흑이 먼저 124의 곳을 점거하기라도 하면 백 대마의 호흡공간이 확연히 좁아질 뿐 아니라 다음 흑A만 와도 중앙에 두툼한 살집이 붙어 백이 견딜 수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돌이켜 보면 좌상일대는 백이 선착한 텃밭이었다. 전략적 선택으로 전국의 무게중심을 좌하일대와 하변으로 옮기는 사이 흑의 기습을 허용했고 그 바람에 좌상귀의 실리를 내주면서 외세를 쌓았는데 그 두터움은 눈 녹듯 사라지고 백 전체가 곤마(困馬)로 쫓기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백이 발 딛는 도처가 살얼음판인데 흑이 다가오는 곳곳은 백의 급소다. 125에 126으로 밀고나간다. 살기도 급한데 흑의 영토 확장까지 견제해야 하니 죽을 맛이다.

 김지석의 손길은 봄바람처럼 부드럽다. 느릿느릿 이제야 상변 127로 화답한다. 130을 기다려 좌변 131로 몰아가는 손의 표정이 승자의 그것처럼 당당하다.

 흑B로 끊기면 적지 않은 손실인데 돌볼 틈이 없다. 132로 응수를 물었으나 133의 단호한 차단. 살 수 있으면 안에서 살아보란 뜻이다.

 134, 136으로 어찌어찌 삶의 공간은 마련될 것 같은데 흑은, 점잖게 137로 물러서는 것만으로도 슬금슬금 실리가 불어난다. 중앙 흑C면 검은 계곡이 형성될 터인데 138로 삶을 구걸하고 있으니 답답하고 괴로운 일 아닌가.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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