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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안심대출 숟가락 얹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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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논설실장

안심전환대출이 광풍이다. 20조원이 사흘 만에 매진되고, 또 20조원을 더 푼다. 제대로 장이 선 셈이다. 덩달아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진다. 약자인 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자가 배제되고,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도 무성하다. 금융위원회가 손가락질당할 동안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뒷짐을 지고 있다. 왜 그럴까? 그리고 안심대출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우선 안심대출의 저작권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조치는 금융위가 1년6개월 동안 물밑에서 진행해온 사안이다. 청와대나 새누리당이 주도한 게 아니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의 지원 아래 김용범 금융위 금융정책국장(현 증권선물위원) 등 금융 전문 관료들의 작품이다. 금융위가 난도질당해도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팔짱을 끼고 있는 게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당초 금융위는 은행권 신규 대출의 고정금리 비중을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실패했다. 연이은 기준금리 인하로 고정금리 대출이 천덕꾸러기가 됐기 때문이다. 금융위의 마지막 카드가 안심대출이다. 고정금리로 바꾸고 원리금을 상환할 경우 연 2.6%의 파격적 금리 혜택을 약속한 것이다.

 일부에선 안심대출에 구름 인파가 몰려든 것은 그만큼 가계대출 부담이 컸기 때문이라 풀이한다. 뒤집어 보면 금융위가 이런 극약 처방을 내릴 만큼 우리의 가계부채는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당초 손사래 치던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안심대출의 종잣돈을 보탠 것이나, 은행권이 수천억원의 손실을 무릅쓰고 협조한 대목에서 가계대출 1000조원 시대의 위기의식이 묻어난다.

 “안심대출이 무슨 선착순이냐? 원리금 상환 여력이 있는 중산층만 혜택을 주느냐?”고 물어뜯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이 정책의 목표는 분명 두 가지다. 겉으로 내세우는 건 가계부채의 구조 개선이다. 국제 기준으로 보면 ‘변동금리-거치식’은 위험한 신용대출이나 다름없다. 이를 35% 가까이 ‘고정금리-원리금 상환’으로 바꿔 가계부채의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숨은 의도는 금융 시스템 보호를 위한 방화선(防火線) 구축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등 외생(外生) 충격에 대비해 ‘노아의 방주’를 준비하겠다는 포석이다. 금융당국은 9억원 이상의 주택 소유자(대부분 소득 4~5분위)는 스스로 대처할 능력이 있다고 간주한다. 잔인할지 몰라도, 제2금융권 대출자(주로 소득 1~2분위)는 ‘노아의 방주’를 타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1차 안심대출 이용자의 평균 소득이 연 4100만원, 주택 가격이 평균 3억원이란 사실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안심대출 덕분에 1%대 수익공유형 모기지 등 다양한 유인책에도 꿈쩍 않던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금융위 측은 내심 “2차분 20조원이면 충분하다”고 자신한다. 안심대출 1차 마감 날에도 은행 창구가 크게 붐비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체 전환 대상 112조원 중 실제 자격을 갖추고 원리금 상환 의사가 있는 경우는 40조원 남짓으로 추산한다.

 문제는 금융위가 파상 공세에 버텨낼 체력이 있느냐다. 이미 제2금융권 주택담보 대출자 100만여 명이 “왜 우리는 갈아타지 못하느냐”며 아우성이다. 사람이 몰리면 당연히 눈독을 들이는 게 정치권의 본능이다. 어제 새누리당은 “심각한 형평성 문제가 있다. 제2금융권 대출자까지 확대되도록 당정협의를 하겠다”며 숟가락을 놓았다. 하지만 정치적 생색내기일 뿐 현실성은 거의 없다. 고금리로 먹고사는 제2금융권부터 난색을 표시하고, 한국은행도 “추가 출자는 절대 없다”며 선을 그었다. 엄청난 ‘도덕적 해이’와 천문학적 재원을 누가 감당할지도 의문이다.

 금융위가 모처럼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제 안심대출은 끝”이라 분명히 선언해야 한다. 금융시장에 막연한 환상을 남겨두는 건 금물이다. 안심대출마저 정치적 포퓰리즘에 오염되면 언제 금융 시스템을 뒤흔들 ‘불안대출’로 변질될지 모른다. 정치권이 자꾸 안심대출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것부터 불길한 징조다. 금융위가 조직의 운명을 걸고 버텨낼 맷집이 있을는지….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