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당나라 때 시광 이백을 보라 … 광자들 판칠 때 문화 꽃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광자의 탄생
류멍시 지음, 한혜경·
이국희 옮김, 글항아리
292쪽, 1만5000원

‘선비여, 일분(一分)의 광(狂)만은 부디 남겨두시길(書生留得一分狂).’ 저자가 책을 쓰는 계기가 된 문장이다. 문화인이라면 삼분(三分) 또는 오분(五分)의 많은 양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최소한의 광(狂)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광(狂)은 무엇인가. 중국 문화의 저변엔 유가와 불가, 도가의 삼류(三流)가 얽히고 설키며 흐른다. 그러나 그 크고 도도한 흐름 밑에는 좀 더 천천히 흐르거나 또는 더 맑거나 흐린 부분도 있게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역류(逆流)의 기운은 특별하다. 이 역류의 움직임을 중국 문화사에선 광(狂)으로 지칭한다고 한다. 광은 오만하고 기발하며 또 창조적이다. 함의가 풍부하다. 옮긴이가 광을 단순히 ‘미치광이’라 번역하지 않고 한자 광을 그대로 쓴 이유다.

우키요에(浮世繪) 화가 쓰키오카 고교(月岡耕漁, 1869~1927)가 그린 ‘동방삭’. 동방삭은 한 무제 때 ‘광인’으로 불린 인물이다. [사진 글항아리]

 저자는 광의 긍정적 힘에 주목한다. 광자(狂者)는 감히 생각하고 감히 말하며 또 감히 행한다. 사상이 독립적이며 시류를 따르지 않는다. 이 같은 광자와 광자정신을 저자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통사적으로 추적해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낸다. 진한(秦漢)시대의 올곧은 광(狂直)과 미친 척 가장하는 광(佯狂)에서 시작해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의 광자들이 죽림(竹林)과 전원(田園)을 거쳐 선림(禪林)으로 나아가는 과정, 그리고 이백(李白)으로 대표되는 당(唐)대의 시광(詩狂), 현대 중국에서 벌어진 문혁의 집단 광기까지 두루 살핀다.

 그런 고찰의 결과는 무언가. 중국 역사에서 광자 정신이 위세를 떨쳤을 때는 인재가 배출되고 창의성이 용솟음쳐 인문과 예술이 꽃을 피웠다. 그러나 광자가 숨을 죽이면 사회는 이내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말았다는 것이다. 대신 곡학아세(曲學阿世)를 일삼는 자들이 판친다. 물론 광이 지나쳐 방자해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광의 정신 없이는 창조적 발전은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런저런 갑(甲)에 짓눌려 오늘도 찍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사는 현대인에게 ‘일분의 광’이라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의 외침은 무척이나 아프고 또 아프게 다가온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