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한 삶과 집 … 우리는 모두 그에게 빚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우리는 그에게 크게 빚졌다.”

 지난 23일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시신이 안치된 이스타나 대통령궁 총리 관저 앞. 검은 옷을 입은 아이린 여는 꽃다발을 든 채 조문 행렬에 서 있었다. 그는 “내가 누리는 삶과 집, 가족, 교통수단, 건강보험 같은 좋은 환경은 그가 만들어준 것”이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리 전 총리의 서거를 애도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흰 장미나 백합 같은 꽃을 들고 줄을 섰다. 하얀 천막 아래엔 검은 상주 완장을 찬 안내요원들이 금속탐지기로 꽃과 소지품을 검사했다. 조문객들이 남긴 추모 엽서는 하루 만에 2만 장을 넘었다. 한 엽서에는 ‘#리콴유가 없으면 우리도 없다(#NO YEW NO US)’는 글이 적혀 있었다.

 나이 든 이들은 싱가포르를 가난에서 번영으로 이끈 리 전 총리의 업적에 감사를 표했다. 어렸을 때 초가집에서 살았던 좡야잉(79)은 “지금의 싱가포르는 천국과 같다. 안전한 보도와 현대적 아파트 단지가 어디에나 있다”고 말했다. 리 전 총리는 가난한 무역 거점을 거대도시로 성장시키고 동남아의 금융 중심지로 만들었다. 추모객들은 리 전 총리의 야당 탄압 같은 어두운 측면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육군 대령 출신의 요슈샹(65)은 리 전 총리에 대한 비판에 대해 “그는 돼지가 돌아다니던 길을 카페 가득한 거리로 바꾸었다”며 “계란을 깨지 않고 오믈렛을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치적 억압에도 불구하고 리 전 총리를 옹호하는 발언이다.

 젊은 층도 예외가 아니었다. 페이스북에서 일하는 커렌 사우(30)는 “부모님이 리 전 총리 사진을 집에 걸어놔 그를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거 소식에 하루 종일 울었다는 후처위(35)는 “‘물을 마실 때는 반드시 그 근원을 생각하라(飮水思源)’는 중국 격언과 같이 싱가포르를 번영으로 이끈 리 전 총리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 LOVE Singapore’ 티셔츠를 입고 추모 행렬에 동참한 인도 출신의 엔지니어 바수키 스루파티는 “리 전 총리의 서거 소식을 듣고 2분간 흐느껴 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20년 전 싱가포르에서 일했던 그는 싱가포르를 다시 방문했다 타계 소식을 들었다. 그는 “매일 ‘리 전 총리가 나의 우상’이라는 말을 되뇐다”며 “그의 안보·법·규칙·진실·정직이 그의 비전과 리더십의 요체”라고 말했다.

 총리 관저뿐 아니라 리 전 총리가 타계한 싱가포르 종합병원, 그의 선거구인 탄종 파가르 지역회관, 의사당에도 국민들을 위한 추모소가 차려져 하루 종일 조문객을 받았다. 엄마 손을 잡고 추모소를 찾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수만 명이 리 전 총리를 위해 애도했다. 싱가포르 방송도 하루 종일 리 전 총리를 추모하는 내용을 내보냈다. 리 전 총리의 맏아들인 리셴룽(李顯龍) 총리는 23일 방송에 출연해 “아버지는 싱가포르를 위해 그 자신을 포함해 모든 것을 바쳤다”며 “아버지는 임종 전 ‘나는 싱가포르를 만드는 데 인생을 바쳤다. 삶의 마지막 날에 내가 얻은 것은 성공한 싱가포르이고 포기했던 것은 내 삶이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리 전 총리의 시신은 가족 추모기간(23~24일) 이후 25일부터 의사당으로 옮겨져 28일까지 국민 조문을 받는다.

싱가포르=토머스 풀러, 홍콩=오스틴 램지

사진설명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의 아들 리셴룽 총리(사진 1)가 24일 총리 관저 앞에서 추모객들을 맞고 있다. 한 시민이 리 전 총리의 시신이 안치된 총리 관저 추모소에서 절을 하는 모습. 싱가포르 정부는 29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정했다(사진 2). [싱가포르 AP=뉴시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