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13년 경제제재 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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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경제제재 조치가 13년 만에 풀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과 영국이 제출한 대(對)이라크 경제제재 해제 결의안을 22일 오전(현지시간) 표결에 부쳐 기권한 시리아를 제외한 14개 이사국 전원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미국은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직후인 1990년 8월부터 강도 높은 제재조치를 취해왔으며, 특히 유엔을 통해 이라크의 석유수출을 완전히 통제함으로써 이라크 국민은 최소한의 식량과 의약품으로 지난 10년 이상을 버텨왔다.

미국과 영국은 지난 9일 이 결의안을 제출했으나 프랑스.러시아.중국 등의 반대에 부닥쳐 두 차례의 수정작업을 거쳐 타협안을 만들어냈다.

이날 안보리가 채택한 결의 1483호는 가장 큰 쟁점이었던 미국의 이라크 통치기간과 관련, 결의안 채택 후 12개월 내에 안보리가 결의안 이행 상황을 점검, 후속조치를 결정하도록 했다.

당초 안은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정부가 이라크 국민에 의해 선출될 때까지 동맹국이 이라크를 통치하며 별도의 유엔 결의가 없는 한 그 기간이 연장될 수 있도록 했었다.

미국은 결의안을 통해 이라크를 통치하는 동안은 석유수출대금의 사용권도 완전히 거머쥐게 됐다.

향후 수출대금은 물론 그동안 유엔이 관리해왔던 이라크 석유수출대금 계좌에 남아 있던 1백30억달러도 결의안에 따라 신설되는 '이라크 개발기금'에 넣도록 했다. 미국 등에 의해 동결된 이라크 자산도 모두 이 기금으로 이전된다.

결의안은 이와 함께 이라크 새 정부 구성에 관한 유엔의 역할을 확대하고 유엔 사무총장이 임명할 특사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전후 이라크 문제에 관해 유엔의 역할이 불분명하고 제한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미국 측이 성의를 보인 것이다. 존 네그로폰테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기자들에게 "안보리가 결의안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주체"라고 부연 설명했다.

통과된 결의안은 안보리 이사국들 간 타협의 산물이다. 전쟁을 앞두고 노출됐던 깊은 갈등을 전후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선 봉합하자는 이심전심이 작용했다.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외무장관과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보리 이사국들이 이번 결의안을 둘러싼 이견을 해소하는 데 큰 진전을 이뤘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통과됐지만 앞으로 미국과 안보리 간에 크고 작은 마찰이 빚어질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라크를 오래 점령하고자 하는 미국으로선 새 정부 출범을 늦추려는 반면 다른 안보리 이사국들은 이라크에서 빨리 손을 떼라고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 유엔 경제제재 해제 결의안 요지

▶무기판매를 제외한 모든 대(對)이라크 무역.금융제재 즉각 해제

▶이라크 무장해제, '석유-식량 프로그램' 6개월간 지속

▶이라크인으로 구성된 과도 행정기구 설립 지원

▶이라크 개발기금 신설, 국제자문위원회가 독립적인 회계감사원 임명

▶유엔 회원국에 이라크 전범 은신처 제공 금지

▶후세인 정권과 후세인 가족의 자산 동결 및 이라크 개발기금에 위탁

▶이라크 국립박물관, 도서관에서 약탈된 물건 회수 조치

▶유엔 사무총장, 이라크 특별조정관 임명

▶미.영, 안보리에 정기 보고, 안보리는 12개월 내에 결의안 이행 상황 검토

<사진 설명 전문>

이라크 주민들 난동
21일 이라크 발라드시(市)의 주민들이 주지사의 승용차를 부수고 있다. 주민들은 발라드시가 사담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를 수도로 하는 살라흐 알딘주(州)에 편입된 것을 거세게 항의해 왔다. [발라드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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