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의 '굿모닝 레터'] 아! 아카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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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가는 중이었어요. "아, 아카시아 냄새. 바로 이 냄새가 열정의 냄새야" 하고 뇌까렸어요. 갑자기 그리움이 타올라 울음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눈물이 많아진다는 걸까요? 전구알처럼 탐스럽게 흰꽃더미를 늘어뜨린 채 나무는 바람에 흔들렸어요. 별 게 아니겠지만 오늘이 아니면 맡을 수 없는 냄새입니다. 내일로 미루면 떠나고 말 애정처럼요.

항상 제 인생은 단단하게 빛나는 것이 사라지고 난 후에 아련한 향기를 맡고 아쉬워한 나날이 많았습니다. 이젠 그런 어리석음이 싫어 빛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잠시 멈춰 꽃향기도 깊이 음미했어요. 이승과 저승을 연결시키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냄새. 내가 나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저렇게 꽃핀다는 건 전생애를 거는 거겠죠.

'가슴 저미는 열정'을 얘기했던 산도르 마라이의 멋진 소설 '열정'이 생각났어요. 언젠가 그 책이 너무 좋아 아우에게 소포로 띄웠죠. 허망하게 지더라도 열렬하게 피어난 저 꽃처럼 열정은 우리가 끝없이 성숙해지기 위해 꼭 필요하지요. 벌써 아카시아꽃이 떨어져 고운 쌀알처럼 길에 쌓여갑니다.

<시인.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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