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야문지 따져 심어야제" "민주당 찍어야지 어쩔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1. 21일 오후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유세를 한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롯데마트 월드컵점. 주민 강환(43)씨가 “먹자골목 가 보쇼. 장사가 안 돼야. 광주는 버려브렀다고”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4월 29일 보궐선거에서 천 후보를 찍겠다고 했다. “광주를 대변하는 정치인, 힘 있는 사람이 가서 예산을 끌어와야 된당께”라면서다.

 익명을 원한 택시기사 김모씨는 “천정배가 더 똑똑하지 않은가? 무소속 당선돼도 야당이겄죠”라고 말했다.

 #2. 같은 날 오전 새정치민주연합 조영택 후보는 광주시 서구 풍암호수 일대를 돌았다. 광주 서구에서 30년 넘게 살았다는 김모(69)씨는 조 후보에게 “앞으로 광주에서 90% 넘게 지지받는 일은 없을 것이여”라면서도 “그래도 별 걱정 말고 다니쇼”라고 말했다. 주민 박민자(58)씨는 “민주당 찍어야지, 어쩔 것이여. 말들은 사람 보고 찍는다고 하고, 나도 절대 투표 안 한다고 하지만…”이라고 속마음을 보였다.

 광주 서을이 벌써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천 후보와 조 후보에 강은미(정의당) 후보까지 야권 성향 후보만 3명이 출전한 데 이어 최근 정승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새누리당 후보로 가세하면서다. 민심은 아직 고민 중이다. “둘 중 누가 야문지 따져서 심어 줘야제”라는 박정태(46)씨의 말이 ‘전략적 선택’을 고심하는 정서를 보여 준다. 인지도에선 천 후보가 앞서고 있음이 실감 났다. 시민들은 천 후보에게 “TV에서 본 것보다 훨씬 젊다”거나 “같이 사진 좀 찍자”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천 후보가 건넨 명함을 받은 사람이 “나는 배신한 사람 시려” 하고 나지막이 내뱉는 모습도 보였다. “그래도 광주에서 (제1야당이) 한 석이라도 줄믄 아쉬움이 있제”(김낙숙·72)라는 정서가 무시할 수 없어 보였다.

 노인정에선 이런 대화가 벌어졌다.

 ▶박재길(75)=“탈당한 사람 속을 모르겄어. 권노갑 말이 맞어. 무소속으로 1석, 2석 돼서 뭐할 것이여. 철새는 안 되는겨. 근디 문재인이 솔직히 우리 좋아하도 않잖어.”

 ▶A씨=“(천 후보는) 왜 탈당을 했느냐고. 차라리 (야당에서) 경선했어야지.”

 이 틈을 새누리당 정승 후보가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정 후보는 ‘불독같이 일해서 정승처럼 모시겠다’고 쓰인 빨간색 조끼를 입고 광주의 한 노인복지관에서 배식 봉사를 했다. 현지에서 현 정부를 칭찬하는 목소리는 만나지 못했다. 침체된 지역 경기도 경기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 이것까지 허가받아서 부를 거야?”(한 목사)라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하지만 지난 19대 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의 득표율(당시 39.7%)과 지난 7·30 때 그의 순천-곡성 당선을 말하는 이들은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정 후보는 “이 의원이 낙선된 걸 아쉬워하는 분이 많다”며 “이번에도 여당 의원을 한 사람이라도 만들어 지역 발전을 앞당기자고 격려를 많이 해 주신다”고 말했다.

 광주가 격전지로 떠오르자 문재인 대표는 22일 광주에서 열린 ‘아시아문화중심도시특별법 통과 보고대회’에 참석했다. 4·29 재·보선 지역 중 가장 먼저 광주를 찾았다. 문 대표는 “광주는 재·보선의 전체 분위기를 좌우할 수 있는 지역이라 더더욱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21일 오후 유세지로 향하는 천 후보의 승용차에 동승해 선거 전반에 관해 문답을 나눴다. 천 후보는 차 안에서 바나나를 집어 들며 “선거 때는 에너지를 많이 쓰니 일부러 먹는다”고 설명했다.

 -문 대표가 내일(22일) 광주에 내려오는데.

 “뭐, 각오한 일이에요. 천정배 효과 아니겠어요? 선거란 게 역시 경쟁체제가 되니깐 이런 일도 생기는 거 아닙니까.”

 -피부로 느끼는 현지 반응은 어떤지.

 “이젠 제가 생각하는 출마의 논리와 명분을 열심히 전파하는 수밖에. ‘가 보니깐 민심이 좋데’, 이런 말 믿지 않아요. 여론조사도 임박하기 전까진 안 믿고. 사람 마음은 언제든지 바뀌니. 내 마음 나도 모르는 거지요.”

광주=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