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당근보다 채찍영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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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호 04면

영화 ‘위플래쉬’의 열기가 대단합니다. 음악 영화의 평범한 구도를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음악으로 포장한 로맨스나 성공담이 아닙니다. 최고의 재즈 드러머가 되고 싶은 음악학교 학생과 한계돌파를 요구하는 폭군 선생님의 무지막지한 대결입니다. 거듭되는 반전에 관객은 속수무책입니다. 이미 ‘재즈 공포물’ ‘뮤직 스릴러’ ‘음악 무협영화’ 같은 수식어가 붙은 걸 보면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의도는 적중한 듯 싶네요. “음악 영화지만 전쟁 영화나 갱스터 물 느낌이 나게 하고 싶었다. 악기가 무기로 변하고 내뱉는 말들이 총알만큼 난폭한, 그런 것들이 음악 학교 연습실이나 콘서트 무대에서 펼쳐지는.”

플렛처 교수는 두 얼굴의 소유자입니다. 육두문자 남발에 따귀 때리기, 의자 던지기가 기본이고 학생 간 비교를 통해 지독한 모멸감을 주다가도 슬쩍 마음을 어루만지는 온탕 전략도 구사하죠.

앤드류는 그런 가르침을 이를 악물고 받아들입니다. 마지막 장면, 분기탱천해 “내가 신호할께”라며 지휘의 영역까지 침범한 앤드류의 모습은 사자왕에 도전하는 젊은 숫사자의 포효였습니다. 그 모습에 분노하면서도 무아지경의 음악에는 공감하는 교수의 표정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듯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가장 쓸데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했어’야”라는 폭군 교수의 ‘채찍’(위플래쉬)에 이렇게들 열광하다니, 세상이 점점 사도마조히즘을 원하는 걸까요. 이 자극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요.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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