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사드·AIIB 이어 또 악재 … 대미 외교 실패로 비칠까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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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이어 외교부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이란 세 번째 악재를 만났다. 일본이 아베 총리의 연설을 ‘면죄부’로 활용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외교부는 표면적으로는 잠잠한 분위기였다. 19일 정례 브리핑에서도 아베 총리의 합동연설에 대한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연설 일정을 잡는 것은 미국 의회가 전적으로 판단할 사안”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찬반을 논의할 사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속내는 복잡했다. 그동안 외교부는 다양한 경로로 아베 총리의 합동연설에 대한 우려를 미국 측에 전달해왔다. 미국 측에 직접적으로 ‘연설 기회를 줘선 안 된다’고 요구하기보다 연설 내용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는 ‘로키(low key, 낮은 자세)’ 전략을 활용했다고 한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 조야에 아베 총리가 연설을 할 경우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이 담길 수 있다는 우리 측의 우려를 전달해왔다”며 “중국 측도 그런 우려를 미국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그동안 일본의 과거사 인식 문제에 대한 우리 외교 전략이 일정 부분 성과를 내고 있다고 판단해 왔다. 이달 초 일본을 찾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군 위안부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 것도 긍정적 신호로 봤다. 그런 만큼 합동연설을 하게 되면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까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대미 외교정책의 실패로 비춰질까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가뜩이나 미국과는 최근 사드·AIIB 등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안이 많 다.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을 사이에 놓고 일본과 우리가 힘싸움을 하는 구도로 비춰질까 걱정”이라며 “미국 정부도 아니고 의회 차원에서 결정한 연설을 갖고 외교 실패로 보는 것은 지나친 시각”이라고 말했다.

 일단 외교부는 아베 총리의 연설에 과거사에 대한 반성 등이 담길 수 있도록 하는 데 외교력을 모은다는 계획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의 합동연설을 허용하는 만큼 미국이 일본에 몇 가지를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며 “연설의 반대급부로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 등이 담길 수 있도록 다양한 경로를 통해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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