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수업시간에 계산기 허용에 찬반 논란 점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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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초ㆍ중ㆍ고교 수학 수업시간에 계산기 사용을 허용하기로 한 데 대해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교육부는 15일 발표한 제2차 수학교육종합계획에서 “학생들이 불필요한 계산에서 벗어나 수학적 개념과 원리 학습에 충실할 수 있도록 계산기나 소프트웨어 등 공학적 도구의 활용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부터 계산기 사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교육부 관계자는 “초등학교에서 계산을 목적으로 하는 단원에선 당연히 계산기를 쓰면 안되겠지만 단원의 목적이 활용일 경우 계산하다가 정작 배워야 할 것을 놓칠 수 있으니 도구를 쓰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원기둥의 부피를 구할 경우 원주율을 곱하는 계산을 하다 시간이 흘러가버릴 수 있다. 계산 시간은 줄이되 원주율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를 충분히 배우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그러나 학교 수학시험이나 수능에서 계산기를 허용하는 방안은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계산기 사용에 찬성하는 이들은 외국에서도 이미 수업시간은 물론이고 시험에서도 쓰고 있는 만큼 개념과 원리 학습을 위해 단순 계산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모(17)군은 “캐나다에서 유학했는데 사칙연산도 계산기로 하더라. 계산기를 쓰던 안 쓰던 주어진 문제만 풀면 됐다”고 전했다. 대학생 최모(21)씨는 “대학 가면 어차피 계산기로 하기 때문에 연산보다 왜인지 의문을 갖게 하는 게 좋은 교육”이라고 했다. 고교생 박모(18)군은 “수학을 잘 하는 학생들에겐 계산기 도입이 득이 될 것 같다. 식을 세운 후 계산하는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데 무의미한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환영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의 수학 실력이 줄고 수능 등이 그대로일 경우 효과가 없을 것이란 지적도 많다. 한 고교 수학 교사는 “계산기를 쓰다 수능 등에서 연산을 틀려 손해를 볼 수 있는데 누가 계산기를 쓰겠느냐. 학교 시험과 수능 문제를 그대로 두고 계산기 허용을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비판했다.

초등학생 학부모 김모(35)씨는 “가뜩이나 스마트폰 때문에 애들이 핸드폰에서 눈의 떼지 않는데 수학시간에 계산기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쓰게 하면 수학 기초가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학생 신모(20)씨는 “대학 때 처음 공학계산기를 써보니 편했는데 암산 능력이나 계산 속도가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계산 후 확인하는 건 좋지만 부작용이 있더라”고 했다. 한 주부는 “초등학생 스토리텔링 수학 문제를 읽어보면 식은 간단한데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차라리 계산기보다 한자 공부를 시키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수학포기자’를 막는 대안으로 계산기 사용은 해법이 아니고 진도 빼기 위주로 진행되는 수업을 바꾸고 시험 성격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쇄도했다.

한 고2 학생은 “계산기 사용이 도움이 되려면 수학 수업이 공식에 숫자만 대입해 풀어내는 게 아니라 공식을 유도하고 증명하는 위주로 바뀌어야 하고 시험도 증명이나 서술형으로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캐나다 유학생 출신 대학생도 “고1부터 현지에선 공학계산기를 쓰게 하는데, 공식을 외워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그 공식을 활용해 문제를 푸는 법을 수업에서 가르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수학 교육에선 계산기 사용보다 문제 출제 유형을 바꾸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중학생과 고교생 자녀를 둔 박모(45)씨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는 수학을 어려워하지 않았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니 난관에 빠졌다. 계산이 어려운 게 아니라 수학 문제 자체가 너무 뜻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고 말했다. 그는 “원리를 이해시키지도 않고 무작정 공식만 가르치고 진도를 빨리 나가니 애들이 못 따라가 수포자가 된다”고 덧붙였다.

향후 수능 등으로 계산기 허용을 확대할 경우 수험생들에게 모두 같은 계산기를 지급하지 못하면 유불리가 갈릴 수 있고 컨닝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부는 2011년 수학 시험에 계산기를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논란이 일자 철회한 바 있다.

김성탁 기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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