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처' 흔든 유소연 … 3타 차 뒤집고 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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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유소연이 유럽여자프로골프 미션힐스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박인비를 제치고 우승했다. [노건우 사진작가, 미션힐스 제공]

17번 홀(파4). 전 홀에서 버디를 잡아 공동선두가 된 박인비(27·KB금융)의 티샷이 해저드에 들어갔다. 승부의 추는 유소연(25·하나금융)쪽으로 기우는 듯 했다. 하지만 박인비는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세 번째 샷을 핀 옆 3.5m에 붙였다. 유소연도 비슷한 거리의 버디 퍼트를 남겨뒀다. 누가 먼저 퍼트를 할지 애매한 상황이었다. 유소연은 박인비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박인비는 자신이 먼저 하겠다고 했다. 매도 먼저 맞는 사람이 좋다. 압박감이 많은 상황에서는 샷도 먼저 하는 것이 유리하다. 먼저 샷을 한 골퍼의 결과가 좋을 경우 경우 뒤에 샷을 하는 사람의 부담감은 배가 된다. 유소연은 경기 후 “먼저 퍼트하는 것을 양보했다”고 했다. 먼저 하고 싶었다는 뜻이다.

 박인비는 퍼트의 달인답게 그 퍼트를 쑥 넣었다. 유소연은 부담감을 느꼈다. 그러나 압박감 속에서도 퍼트를 넣었다. 버디가 들어가면서 사실상 승부를 끝낸 챔피언 퍼트가 됐다.

 유소연이 절친한 언니 박인비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5일 중국 하이난 하이커우 미션힐스 블랙스톤 코스에서 열린 유럽여자프로골프(LET) 미션힐스 월드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다. 유소연은 최종라운드에서 버디 7개, 보기 1개, 더블보기 1개로 4타를 줄여 최종합계 13언더파로 박인비에 한 타 차 역전우승을 차지했다.

유소연은 박인비와 함께 나선 단체전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노건우 사진작가, 미션힐스 제공]

 박인비는 2개 대회 연속 와이어 투 와이어(4라운드 내내 선두) 우승 도전에 실패했다.

 유소연은 7번 홀(파4)에서 티샷이 해저드에 빠지면서 더블보기를 범해 3타 차로 벌어져 우승권에서 멀어지는 듯도 했다. 그러나 이후 유소연은 버디 4개를 잡으면서 쫓아갔다. 그는 경기 후 “우승 생각보다는 한 홀 한 홀에 집중하자는 마음으로 경기했다”고 말했다.

박인비가 흔들린 것도 도움이 됐다. 박인비는 3타 차로 앞선 8번 홀(파3)에서 보기를 하면서 추격의 빌미를 줬다. 유소연은 “3타 차와 2타 차는 다르다. 2타는 내가 버디를 하고 상대가 보기를 하면 한 홀에서도 따라잡을 수 있는 스코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둘은 엎치락뒤치락 흥미로운 경쟁을 이어갔지만 상대가 버디를 하면 평소처럼 “나이스 버디”라고 하며 격려도 했다. 박인비는 자신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둔 유소연에게 “수고했고, 잘 했다”라며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유소연은 “인비 언니에게 가장 부러워했던 부분(흔들리지 않는 멘털)을 내가 해내서 너무 좋았다”라며 기뻐했다.

 유소연은 2014년 8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캐나다 여자오픈 정상 등극 후 7개월 만에 다시 정상에 섰다. 또 유소연은 박인비와 짝을 이룬 팀 경기에서도 합산 스코어 25언더파로 우승을 거둬 2관왕에 올랐다.

 유소연이 지난해의 값진 경험으로 멘털이 강해졌기에 박인비와의 승부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 유소연은 “국가대항전 인터내셔널 크라운 미국과의 와일드카드 연장전에서 일생일대의 중압감을 안고 경기를 했다. 이를 극복해 ‘한 단계 더 넘어섰구나’라는 자신감이 붙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 자매들은 막강한 파워를 뽐냈다. 교포를 포함한 한국계 선수들은 올해 LPGA 투어 5연승을 포함해 LET 4개 대회를 모두 휩쓸며 세계 여자골프를 호령하고 있다.

하이커우=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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