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앞뒤 안 맞는 의원입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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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 의원이 많은데다 의원들이 시민단체와 언론이 법안 건수 위주로 의정 활동을 평가하는 것을 의식해 예산과 당론을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법안을 제출한 것 같다."(한나라당 고위 당직자)

본지가 예산이 필요한 의원입법안을 분석한 결과를 보도한 이후 나온 여야의 반응이다. 여야는 공통적으로 의원들이 소요 예산 등에 대한 정밀한 분석 없이 각자 법안을 제출한 점을 인정했다. 열린우리당은 또 보도를 한나라당 공격 소재로 이용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오늘 일부 언론에 보도됐는데 한나라당은 감세를 당론으로 내걸면서 한 의원께서는 무려 41조원에 이르는 예산 소요 법안을 발의했다. 이는 대단히 모순된 한나라당 입법 활동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논평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감세를 반대하고 있지만 열린우리당 역시 17대 국회에서만 38건의 감세 법안을 제출했다.

의원들의 반발도 있었다. 제출 법안이 기사에 언급된 한나라당 모 의원은 "법안의 취지가 옳은데 지역구 챙기기 법안이라고 보도해 유감"이라고 항의했다.

의원이 발의하는 법안이 충실해지기 위해 입법 지원 기구를 보강해야 한다는 데는 여야 모두 공감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지는 않다. 지난달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회 예산정책처가 출범 2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국제세미나는 국회의 예산 통제기능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다뤘다. 주최 측은 미국의 예산정책처(CBO) 관계자 2명을 어렵게 초청했다. 하지만 세미나장에 가장 높은 관심을 보여야 할 의원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본지의 보도 이후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당내에서 예산이나 당론을 고려해 의견 조율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정철근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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