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근혜 대통령의 '실용적 소통'을 기대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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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과 5부 요인과의 어제 청와대 회동은 모처럼 흐뭇한 광경이었다. 박 대통령이 최근 중동 순방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정의화 국회의장·양승태 대법원장·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인복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완구 국무총리를 초대했고 경제 살리기와 4대 개혁 등 국정 전반에 관한 대화가 오갔다. 박 대통령은 특히 “제2 중동의 꿈이 우리 경제의 재도약으로 이어지도록 하려면 무엇보다 국민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국가적인 역량을 결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참석자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또 오는 17일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민생 현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통령과 5부 요인 간 회동이 이 정권 출범 후 처음이라니 사실 늦은 감은 있지만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할 만하다. 따지고 보면 지난 2년간 국정의 혼선과 인사 실패가 빚어졌던 건 대부분 소통 부재 때문이었다. 총리·장관 후보자들의 잇따른 낙마, 정윤회 문건 유출 파문, 증세 없는 복지 논란, 연말정산 파동 등은 불필요한 비밀주의·일방통행식 국정 운영 스타일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그러다 보니 국정 동력이 떨어지고 정부에 대한 신뢰까지 추락하게 된 것이다.

 청와대와 내각의 인적 개편이 마무리된 만큼 이제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도 확 바뀌어야 한다. 박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경제 살리기를 위한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국가적인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일, 다시 말해 국민적 에너지를 모으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그러려면 국정 운영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고 허심탄회하게 속사정을 설명하고 협력을 요청하는 게 일상화돼야 할 것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중간선거 패배 직후 기자회견에서 “백악관에서 해야 할 일이 많지만, 내가 국민들에게 그들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정치의 요체가 소통과 타협에 있음을 실감케 하는 말이다.

 어제 회동을 계기로 박 대통령이 여야 지도자는 물론 사회 각계각층 인사, 원로, 전문가 그룹, 언론·종교·시민사회로 대화의 폭을 넓혀 ‘실용적 소통’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실용적 소통이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국정 파트너로서 야당을 존중하고 그들의 견해를 경청하는 게 중요하다. 과거에도 회담 후 여야 관계가 더 냉각되거나 소득 없이 끝나버린 영수회담 사례가 적지 않았다. 상대방의 얘기에 귀를 열지 않는 ‘형식적 소통’에 그쳤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올해는 공무원연금 개혁, 노동 개혁 같이 굵직한 국정 개혁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야당의 협조 없이 돌파하는 건 현실적으로 난망하다. 대통령이 소통의 제일선에 나서 야당을 설득하고 국민에게 협조를 구할 때, 그래서 “청와대의 문턱이 낮아졌다”는 얘기가 나올 때 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