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직접대화 거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북한은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남북한 직접대화를 통해 민족문제를 협의하자는 우리측 제의를 다시 거부했다.
이로써 지난 14일 판문점에서 양측대표가 진의종 국무총리의 서신을 주고받는 한장의 사진을 보며 온 겨레가 가졌던 모처럼의 기대는 이틀이 못 가서 깨지고 맡았다.
진 총리의 서신은 지난 1월 24일 당시의 북한 정무원총리 이종옥이 제3국을 통해 국제우편으로 보내온 3자 회담 개최에 관한 서신에 대한 회신이었다.
회신 내용은 ①버마 사건에 대한 북한의 반성과 적절한 조치의 촉구 ②남북 당사자간의 직접대화 ③이산가족을 포함한 남북한 겨레의 서신교환과 상호왕래 주선 ④필요할 경우의 유관국 국제회의 개최 등이었다.
북한은 15일 평양의 보도매체를 동원해 이 제의들을 거부하면서 그들의 3자 회담을 계속 고집했다.
3자 회담이란 먼저 미국과 북한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위한 평화협정을 체결한 다음에 남북한이 불가침 협정과 통일 문제를 논의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과의 직접대화와 주한미군 철수를 모든 것에 선행시키려는 그들의 계략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일본의 항복을 받고 48년에 이미 철수한 미군을 이 땅에 다시 끌어들인 것은 누구이고 그들의 철수를 막는자가 과연 어느 편인가를 북한 당국자들은 생각해 보아야한다.
적화통일에 눈이 어두워 총부리를 겨눈 6·25 남침이 없었다면 미군이 이 땅에 왔을리가 없고, 평양 측의 군사력 증강·무력도발이 없었다면 미군은 벌써 떠났을 것이 아닌가.
따라서 주한미군의 철수조건은 자명하다. 다시는 남침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약속과 중공과 소련이 포함된 국제적인 보장이 마련되고 대남 도발을 중지하면 미군이 이 땅에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군철수 보다는 불가침협정 체결의 선행이 논리적이다. 따라서 북한의 주장대로라도 남북한 직접대화가 앞서야한다.
더구나 미군철수문제는 우리와 미국 사이의 문제이지 북한이 관여할 사항이 못 된다.
71년의 남북대화는 현재 수준의 주한미군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시작됐다. 북한자신도 알 듯이 미군이 대화를 방해한 일은 추호도 없다. 대화의 중단은 평양 측의 일방적 조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이미 세상이 알고 있는바다.
우리는 북한이 말로는 「자주」와「주체」를 수없이 외쳐온 것을 알고 있다. 『조선의 통일문제는 조선 민족 내부의 문제이며 우리 민족의 자결에 속하는 문제』라는 것이 그들의 공식 주장이었다.
이런 주장은 「7·4 성명」을 통해 이미 남북간에 합의가 이루어져 민족전체의 컨센서스가 되어 있다. 그런데 북한은 이제와선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평양 측은 하루빨리 민족자주의 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서울을 거치지 않고는 미국에 갈 수가 없고, 미국을 거치지 않고 다른 서방국가와 통할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