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서한 전달 판문점 스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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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접촉시간은 8분>
진의종 총리가 평양의 강성산 총리에게 보내는 답신을 전달하기 위해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 회의실에서 만난 남북한 연락관들은 올 겨울의 이상 한파에 대한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약속시간인 상오10시 정각 우리측 연락관들은 남쪽문을 통해 회의실에 입장.
푸른 테이블보가 드리워진 탁자에 자리를 잡고 상대방을 기다렸다.
10시1분 북쪽 문으로 회의장에 도착한 북한 측 연락관들은 우리 연락관들과 서로 구면임을 확인하고 『안녕하십니까』하며 악수를 나눈 뒤 자리를 잡았다.
▲서울측=날씨가 많이 풀렸지요. 우수가 며칠 안 남았는데 대동강은 어떻습니까.
▲평양측=오면서 보니까 올해 농사준비를 하는지 농민들이 바쁘더군요. 그쪽은 아직 준비를 안해도 되지요.
▲서울측=지난 80년 8월2일 제10차(남북한 총리회담 준비)실무접촉 때 만나고 오늘 만났으니까 3년6개월이 되었습니다.
▲평양측=그렇게 되나요.
▲서울측=지난 80년9월26일 제11차 실무접촉을 이를 앞두고 귀측에서 방송으로 안나오겠다고 한 후 25일 직통전화로 그쪽 최 선생을 한참동안 찾았습니다.
▲평양측=그랬었어요.
▲서울측=우수·경칩이면 대동강물도 풀린다는데 우리 남북관계도 빨리 대동강이 풀리듯이 해빙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두분을 만나니까 다시 생각이 나는데 예전에는 서로 연락할 일이 있으면 자유의 집, 판문각을 부르고, 또 서울에서 평양을 불러 서로 편리하게 만나곤 했는데 국제우편으로 편지를 보내고 방송으로 당신들을 부르는 상황이 됐군요.
판문점 연락사무소 기능을 정상화하고 남북 직통전화를 재개통해서 급한 일이 있을 때 이용하도록 합시다.
수단이야 어쨌든 오늘 이렇게 우리가 만나면 되지 않느냐.
▲서울측=20일게 내가 전화오기를 기다려 볼까요.
▲평양측=오늘 서한을 주고받는 임무 외에는 얘기하지 맙시다.
저쪽에서 편지 전달을 재촉하는 듯한 인상을 보이자, 우리 측 연락관은 가방에서 가로 30cm, 세로 30m의 흰 봉투를 꺼내『대한민국 진의종 국무총리로부터 평양의 강성산 정무원총리에게 서신을 전해달라는 위임을 받고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한글로「정무원 총리 강성산 귀하」라고 쓰여진 봉투를 건네 받은 북한 측 연락관들은 『다른 얘기는 없느냐』고 묻고는 우리측이『없다』고 하자 서로 각기 들어온 출입문을 통해 퇴장.
이날 연락관 접촉은 8분 여만에 끝났는데 만난 직후 우리측 연락관은 「솔」을, 북한측에서는「백마」담배를 서로 건넸다.
회의장에는 양측에서 2명의 연락관·풀기자·카메라맨 3명씩 모두 5명씩만 들어갔는데 중립국 감독위 요원들은 회의실 창문을 통해 양측 연락관접촉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가슴엔 김일성 배지>
양측 보도진은 회의시작 5분전 회의실에 들어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오래간만이라며 안부를 물었는데 북한 측 보도진은 모두 오랫동안 판문점에 나온 구면들.
북한측 연락관들은 서한을 받기 위해 평양을 출발, 개성에서 하룻밤을 잔 후 이날아침 도착했다고 밝혔는데 연락관과 보도진들은 모두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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