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마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담배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숭고한' 사물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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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라는 사물이 있다. 많은 이들에게 순간의 파라다이스를 제공해주는 이 사물을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대가 되었다…어떻게 이런 극단적인 '가치 추락'이 가능한가. 담배는, 변하는 건 사물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이라는 것을 간단히 보여준다. 개인적 취향과 사물의 향유를 둘러싼 문제에는 그 사물이 유통되는 사회의 억압과 인식론적 허위가 반드시 개입해 있다…지금 한국 사회에서 담배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숭고한' 사물이다. 담배는 사회의 여러 건강 담론을 압축하고 있으며, 국민건강을 해치는 만악의 근원, …악마적인 대상으로 과잉 승격되어 있다. 이때 담배는 사회적 불행의 진정한 근원을 대신하는 희생제의적 사물이 된다. 여기에서 사회는 삶의 질에 관련된 진짜 문제를 회피하는 대신, 이 사물을 사회적 불행의 원천의 자리로 슬쩍 바꿔치기해 갖다 놓은 것이다. 이 심리적이고 정치적이며 신화적인 메커니즘에서 '국민'은 '군중'으로 변하기도 한다. "모든 게 저 놈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함돈균의 산문집 『사물의 철학』(세종서적)에 실린 '담배'에 대한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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