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주의 데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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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독일사람들의 조크집에 이런 얘기가 있다. 한 실업자가 직업 안정소를 찾아갔다.
『나는 결혼해서 지금 아이들이 10여명이나 있습니다.』
창구에서 물었다.
『다른 재주는 없습니까?』
아마 20년쯤 전 독일사람들이 이런 조크를 들었으면 웃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하다 못해「근면한 재주」라도 갖고 있었을 테니까.
지난해 가을 서독 뮌헨 시청 광장에서 관광안내원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일하는 사람은 얼마나 됩니까?』관광안내원은 멋쩍은 듯이 말했다.『절반이상이 노는 사람들이지요.』
요즘 서독의 기업주 1천 수백 명이『열심히 일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데모를 했다는 외신은 무슨 만화를 보는 것 같다.
최근 집계로는 서독 근로자의주노동시간은 40시간이다. 그것을 35시간으로 줄이자는 근로자들의 요구를 듣다못해 기업주들이 시위까지 벌인 것이다. 주35시간이면 주5일 근무에 하루 7시간 노동.
명분은 있다. 더 많은 노동이 필요하면 실업자를 고용하라는 주장이다. 기업주들은 그럴 경우 18%의 임금 부담이 늘어난다고 비명이다.
시비는 그들끼리 할 일이지만, 독일사람들의「놀고 보자」는 풍조는 우리의 관심거리가 될만하다.
82년의 경우 서독사람들이 연중 일한 일수는 2백11일. 1년의 42%를 휴일, 휴가로 보냈다는 얘기다.
결국 이것은 그 사회의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수입의 절반이상을 세금(조세부담률 32.2%)과 사회보장 부담금(19.9%)으로 내놓아야한다.
이것은 일하지 않고도 놀고먹을 수 있는 사람을 위한 복지까지도 포함한 부담이다. 일하는 사람이나 노는 사람이나 혜택이 같은 복지는 그 사회의 활기를 뺏어가기 알맞다. 요즘유럽의 관광명소는 어딜 가나 서독의 리무진 버스와 서독 사람들로 붐빈다. 일하고 노는 것이 아니라 일 안하고 노는 사람들의 행렬이다.
이것은 복지 선진국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직 복지국은 못되지만 그래도 근면과 성실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다. 끝내 잃어버리지 말아야할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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