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섬의 『대동굿』와우산 기슭서 재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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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밤섬 대동올시다. 부군할아버지 부군할머니 수위에서 1년은 삼백육십오일, 낮이면 물이 맑고 밤이면 불이 밝아 소촌은 대촌되고 대촌은 부촌되게 도와주실때 인명에 깔축없이 자손들 번성하여 무시태평케 굽어보시라는 세배살이 정성올습니다.』
반듯이 세운 아이 키만한 삼지창 위에는 주민들의 기원을 담아 더욱 무겁게 처진 돼지 반마리가 올라앉았다.
동네 사람들은 저마다 다투어 돼지위에 돈을 놓는다. 할머니들은 입속으로 동네 태평을 빌며 두손을 비빈다. 만신은 아직도 휘청거리는 삼치창 목을 잡고 부군할아버지가 응감하시기를 빈다. 신과 인간의 만남이 진지하게 이루어지는 굿당안은 숨죽인채 조용하다.
『됐다. 받으셨다!』문득 돼지머리가 삼지창위에 굳건히 서서 만신이 툭툭 건드렫 끄떡 안하자 온 동네가 환호를 올린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발을 구르고 어깨를 들썩이며 흥겹게 춤을 춘다. 막걸리도 질탕하다. 이제 「밤섬」은 1년 내내 태평할 것이라는 믿음에 더욱 취하여 모두가 신명나게 춤을 추는것이다.
음력 정원 초이틀, 마을 굿이 벌어지는 이곳은 와우산 중턱의 조그만 섬 마을이다. 한강 한가운데 떠있던 「밤섬」이 지금의 창천동 산2번지로 옮겨온 것은 68년2월. 한강개발을 위해 「밤섬」이 폭파되자 60가구의 주민 모두가 집단이주를 한 것이다. 서강 나루에서 배를 저어 5분, 밭농사를 짓고 배를 만들며 비교적 폐쇄적으로 오순도순 살아왔던 「밤섬」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다.
당시 한집에 20여만원정도 되는 보상금으로 나라에서 빌려준 이땅에 11평 남짓의 연립주택을 짓는데는 꼬박1년이 걸렸다고 한다. 어느 누구의 힘도 빌지 않고 순전히 「밤섬」주민들만의 손으로 지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집을 지으면서 주민들을 보호하고 지켜주시는 부군님의 당을 꾸미는 것도 물론 잊이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밤섬」에서는 부군님을 모셔왔고 그분의 덕택으로 자손이 번성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1년에 한번 온 동네가 합심하여 돈을 모으고 제물을 준비하여 행하는 부군당 대동굿은, 어떻게 「밤섬」사람들이 생활의 터전과 수단이 달라진 가운데에서도 오늘까지 결속과 유대를 잃지 않고 화목하게 살아올 수 있었는가를 가르쳐주는 열쇠이기도 하다.
점심때쯤 시작되어 자정 무렵 끝난 이번 대동굿은 7년만에 들인 큰 정성이다.
그들의 머리를 가장 깊이 숙여 기원한것은 아마도 아직껏 국유지로 되어있는 땅이 떳떳이 문패를 달수 있는 자기들의 「밤섬」이 되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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