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옴부즈맨 칼럼

고위층과의 밀착 취재 ‘독이 든 사과’될 수 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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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문의 진실 보도의 책임은 막중하다. 밀러 기자는 진실한 취재원이라고 믿었던 부시 행정부 고위 공무원들로부터 손쉽게 제공받은 정보를 오신하고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뉴욕 타임스에 여러 차례 게재함으로써 결국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쟁을 정당화해 줬다. 그리고 그에 발목을 잡혀 몰락하고 말았다.

중앙일보의 인터넷 기사 검색을 이용해 '소식통'이라는 검색어를 쳐보면 수많은 기사가 떠오른다. 모두들 '정부의 소식통' '국정원의 소식통' '베이징(北京) 외교가의 소식통' 등의 이름으로 독자들에게 중요하고 은밀한 듯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익명의 취재원에게서 취재했다는 보도를 읽다 보면 그 기사들이 어디까지 진실을 담보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아직도 중앙일보에 발로 뛰며 정보의 진실성을 확인하려 하기보다는, 고위 공무원들이나 국회의원들과의 친분.인맥을 자랑하며 귀동냥한 정보들을 대단한 것인 양 보도하는 기자가 있는 것은 혹시 아닌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특정세력이 의도하는 대로 교묘하게 왜곡된 정보를 그대로 보도함으로써 국민을 오도하고 특정세력을 정당화한 밀러 기자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자가 귀중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취재원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정보의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취재원의 공개를 거부하고 끝까지 취재원을 보호하려는 기자정신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취재원에 대한 기자의 밀착과 무조건적 신뢰가 오히려 정치세력의 이용 대상이 될 수 있고 진실의 은폐수단이 될 수 있음을 밀러 사건은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중앙일보 기자들이여, 이제는 취재원과의 뒷거래식 정보 제공받기 보도는 기자들의 성공을 보장하는 달콤한 꿀물이 아니라 그대들의 경력을 망칠 수 있는 독물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라. 기자의 무기는 누구누구와의 친분 관계가 아니라 감히 넘볼 수 없는 탐사정신과 비판정신에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시라.

최정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