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친일문학’ 을 향한 두 가지 다른 시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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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그러나 이번엔 아니다. 이른바 '수세적인'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 첫째 목소리는 지난주 조용히 출간된 이효석(1907~42)의 작품집 '은빛 송어'(해토)다. 일제시대 이효석이 일본어로 발표한 작품만 모은 책이다. 단편소설과 수필 등 수록작 14편 가운데 9편이 이번에 처음 빛을 본다.

익히 알다시피 이효석은 친일 혐의를 받는 작가다. 8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1차 명단에는 빠졌지만, 그의 소설 '아자미의 장'(41년)은 일제시대 대표적인 친일문학 중 하나로 언급된다. 그러한 인물이 일어로 쓴 작품이니 국내 문단은 여태 거들떠 보지도 않은(혹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소위 친일작가의 일본어 문학은 그다지 친일적이지 않았다. '은은한 빛'이나 '봄옷'같은 작품에선 민족적 의지도 읽혔다.

또 다른 역풍은 '문학과사회' 겨울호에서 불어왔다. 연세대 유종호 특임교수의 '안개 속의 글-친일 문제에 관한 소견'이란 글이다.

유 교수는 여기서 "친일파 청산운동은 매카시즘을 청산하기 위한 역(逆) 매카시즘"이라고 일갈했다. "일제 말기 국민총동원 체제의 숨막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유로운 건 아무도 없었다"는 주장이다.

특히 미당 서정주(1915~2000)에 대해 유 교수는 "당시 그는 20대 무명인사로, (지금은 유명한) '화사집'도 단 100부 찍었을 뿐이었다"며 "그때 그의 글을 읽고 군인을 지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제 말기 지식인의 처지를 생각한다. 이효석처럼 "일어로라도 쓰느냐 아니면 붓을 꺾느냐"(서울대 이상옥 명예교수)를 놓고 고민했을 것이다. 혹은 죽음이나 망명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상황 논리를 강변하는 게 아니다. 분명한 건, 유 교수 말마따나 "잡문 몇 편 썼다는 것 때문에 중죄인 취급을 받게 하는 것은 형평성 없는 가혹한 저울질"이라는 사실이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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