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 북한 관련 보도 특종 욕심 경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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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국 언론의 북한 관련 기사에 특히 오보가 많다. 대북 문제는 오보를 해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인식이 한국 언론인 사이에 팽배한 것 같다."

한국 언론의 북한 보도를 잘못 인용해 곤욕을 치러 본 주한 외국 특파원이나 공보관들이 한국 언론을 비판하는 대목이다.

북한 관련 기사의 경우 확인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 신문사가 1986년에 생존해 있던 김일성을 사망했다고 보도한 것이나, 최근 일부 언론이 3년 전 사망한 길재경 부부장이 미국으로 망명했다고 보도한 것은 최악의 오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한국 언론이 왜 북한 기사에서 수많은 오보를 양산할까.

그 원인은 먼저 한반도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냉전이 가시지 않은 남북 대치상황에서 아직 '북한 때리기'가 유효하기 때문이다. 전쟁을 경험한 기성세대들이 생존해 있는 현실에서 북한의 도발성을 경고하고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것이 '언론의 상업주의' 전략과 맞아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차단돼 있는 북한 정권의 폐쇄성으로 인해 추측 보도가 난무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도 크다. 그러나 저널리즘 원칙은 열 번의 특종보다 한 번의 오보를 피하라고 하지 않던가. 이런 의미에서 끝까지 진실을 추적해 밝혀낸 본지 정창현 기자의 길재경 부부장 묘지 사진은 돋보인 수확이었다.

선진 언론사의 경우 의도적, 혹은 고의적인 오보를 한 경우 즉각 퇴출시켜 언론인 윤리를 확립하고 있다. 최근 이라크 전쟁 보도에서 기사를 날조한 뉴욕 타임스의 제이슨 블레어 기자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언론의 '신뢰성'은 철저한 확인을 거친 진실 보도에 바탕을 둔다. 외국의 권위지들은 이런 전통을 지켜 왔기 때문에 현재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

통일 전 서독 언론이 동독 주민들에게서 신뢰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사안을 조작하지 않고, 동독에 대한 사실.진실 보도만을 생명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물론 서독 언론들은 동독의 주민과 정권을 철저히 분리, 인권 탄압 등 정권에 대한 비판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 이 같은 대북 접근 자세를 보인 점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기 전에 서구의 진보적인 정치인.지식인.언론인들이 보여주었던 자세와 비슷하다.

이제 한국 언론도 대북 보도에서 새로운 자세와 행태를 보여야 할 시점이다. 북한 주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진실 보도만이 남북 화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통합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물론 북한 당국도 변해야 한다. 오보에 대해서는 이번처럼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확인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 언론들은 북한 관련 보도 때 지나친 특종 욕심을 내거나 다른 목적을 갖기보다 진실과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이 남북 언론 교류를 가능케하며 북한을 개방시키고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통독 과정에서 언론이 한 역할을 보며 얻은 교훈이다.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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