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남편과 아내의 동상이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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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얼마 전 한 벤처회사 사장님을 만났다. 그 회사는 사장.임원이 다 자정 넘어 퇴근하는 게 보통이란다. 한국 경제를 선도하는 산업의 역군으로 존경을 표해야 마땅하나, 시각이 삐딱한 필자는 그 사장님께 부인들이 싫어하겠다, 그 회사 이혼율이 높지 않으냐며 사뭇 시비조로 물었다. 아니란다. 성과급으로 보너스를 많이 주기 때문에 부인들이 좋아한단다. 딴 짓 하다 늦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기 때문인 걸 아니까 괜찮다고 했다. 참 이상하다.

나도 주위에 그 남편들이 한몸 회사에 바치는 친구들이 많다. 여자들끼리 얘기해보면 주중에는 빨리 오면 밤 11시, 주말엔 종일 자거나, 그나마 남으면 골프 치러 간단다. 돈은 갖다주는데 하숙생 같다고. 애들 때문에 할 수 없이 산다고.

우리나라 이혼율이 높다고 한다. 한 해 동안 14만 쌍, 하루에 381쌍이 헤어진다고 한다. 요즘 웬만한 집안에 가족이나 친지 중에 이혼한 사람이 한둘은 있게 마련이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분출시키는 세상이니 가정도 그 대열에 선 모양이다. 그런데 남성들은 위기의식이 아직까지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나 외국에서 부부의 결혼만족도를 조사하면 항상 남편의 만족도가 부인의 만족도 보다 높다. 즉 남편은 우리 가정이 별 탈 없고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아내는 불만이 있다는 소리다. 그 통계 수치의 편차만큼 서로 동상이몽이요, 착각 속에 산다는 뜻이다.

아까 그 사장님에게 내 후배 얘기를 해줬다. 월급만 갖다주고 밖으로 돌고 있는 남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우리 친구들 사이에 회자하는 전설 같은 실화다. 전문직 종사자인 그녀의 남편은 "성실가장". 집, 회사, 집, 회사를 오가며 돈도 잘 벌어다 줬다. 그런 남편에게 후배는 이혼을 요구했다.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에게 후배는 말했다. "당신은 날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잖아." 중년의 사장님은 깊은 충격에 휩싸인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도요?" "행복하지 않았다니까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이혼했죠. 후배는 다시 좋은 사람 만났어요." "그 남편은요?" " 모르죠, 그야." 헤어질 때쯤 그분은 다시 묻는다. "그 남편도 재혼했을까요?" 충격이 컸던가 보다. 여자가 결혼생활에서 경제적 안정 외에 행복까지 추구한다는 것이 충격인지, 버림받은 남자와 일만 하는 자신을 너무 동일시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느 사회이든 일정한 경제적 욕구가 충족되면 삶의 질을 논하고 개인의 심리적.정신적 충족을 원하게 돼 있다. 자신의 부인이 돈을 잘 벌어다 주니까 만족해한다고 자만하는 남자일수록 부인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다.

남과 여. 분명히 다른 종이다.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다르고, 사물에 접근하는 방식도 사뭇 다르다. 화성인.금성인을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살아가면서 새록새록 느낀다. 요즘처럼 남녀의 동등한 권리가 강조되는 때일수록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남녀가 다르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성별에 따른 차이점, 그 다름에 더 섬세한 주의를 기울여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식탁에서 밥 먹고, 애 같이 낳고, 한 침대서 잔다고 결혼생활에서 기대하는 것, 원하는 것이 같다는 보장은 없다.

인류학자가 다른 인종, 다른 부족을 관찰 연구하듯 저 사람이 내 아내다, 내 남편이다라는 생각보다는 나와는 다른 종인데, 저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의도적인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 요즘처럼 시대착오적으로 들린 때가 없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좀 알고 살자.

배유정 방송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