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우리집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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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엊그제 아빠는 한달간의 휴가를 끝내고 다시 열사의 나라로 떠났다.
귀국 얼마전부터 아빠는 나에게 수도권 지역의 어느 곳이든 우리가 집 지을 수 있는 땅을 좀 보아두라고 편지에 쓰곤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곳에도 가보지 않았다. 신문지상을 통해 땅값이 얼마나 뛰었는지, 그래서 우리의 능력으론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부동산값이 또 뛰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을 때마다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거기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 병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아빠에겐 전할 수 없었다. 한참 꿈에 부풀어 열심히 일할 아빠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상 아빠가 귀국하고 2, 3일이 지난 후엔 어쩔수 없이 모든 걸 털어놓았다.
아빠는 그동안 열심히 모은 돈으로 조그마한 땅을 사고 1, 2년 더 고생하여 손수 우리집을 짓는 것이 꿈이며 희망이었다.
아빠는 다음날부터 며칠간을 행여나 하는 마음에서인지 여기저기 땅을 보러 다녔다.
그러나 결과는 크나큰 실망뿐이었다. 힘없는 모습으로 어두워서야 집에 돌아오는 아빠를 바라보는 내마음도 너무 아팠다.
나의 무능이 원망스러웠고, 또 이 모든 것이 나의 죄인양 아빠를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좌절만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며 마음을 달랬다.
관계당국에서도 연내에 강력한 투기억제책에 대한 발표를 하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빠는 다시 용기를 내어 고독과 더위와 싸우며 일하러 떠난 것이다.
밝아오는 새해부턴 우리도 땀흘려 일하고 알뜰하게 저축하면 잘 살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3동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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