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일본이 한·미·일 삼각공조 해친다고 왜 설득 못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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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미국 국무부가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웬디 셔먼 차관의 발언은 한·중·일 과거사 문제를 보는 미국 인식의 일단이 드러난 것이란 게 우리의 판단이다. 셔먼 차관은 지난달 말 “정치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라며 “이런 ‘도발’은 발전 아닌 마비를 초래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국무부 3인자로 늘 신중하고 절제된 언어를 사용해온 그가 공개 장소의 대중연설에서 그처럼 외교적으로 부적절한 표현들을 쏟아낸 것은 어떠한 의도가 담겼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물론 이를 미 정부 공식 입장으로 단정하는 건 무리다. 그동안 미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과거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라고 일본에 주문해왔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위안부를 ‘성노예’라 표현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충격적이고 끔찍한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미국이 중국의 부상에 따라 한·미·일 삼각공조를 통한 아시아 재균형이 절실한 상황에서 끝 모를 한·일 갈등에 조바심을 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해 말 한·일 관계 개선이 내년도 미국의 우선순위 정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파동은 일본의 부적절한 역사 인식과 왜곡이 한·미·일 공조에 가장 치명적 위해(危害)라고 미국을 설득하지 못한 우리 당국의 외교 실패가 초래한 결과이기도 하다. 셔먼의 발언 곳곳에서 “일본은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한국·중국이 국내 정치적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식의 일본 측 논리가 발견되는 것이 그것을 방증한다.

 일본은 워싱턴에 자기 논리를 전파하는 데 보다 적극적이다. 한·미 관계에 틈을 내는 것을 전담하는 외교관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우리도 좀 더 확실하게 우리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과거사는 3국 모두의 책임”이라는 셔먼식 논리는 한·일 관계 개선에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으며 반미감정만 더하게 할 뿐이라는 걸 명확히 인식시켜야 한다. 아울러 미국의 지지를 이끌기 위해서라도 안보·경제 등 다른 사안에서는 일본과 협력을 모색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