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때」묻은 실감 있는 이야기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여성, 특히 대개의 주부들은 언제나 생존의 가장 중심체로서 가장 가깝게 생활의 내부, 생활과 밀착되어 살고 있다.
남성이 대외적이고 관념적이고 이상적이라면 여성은 운명적으로 현세적이고 실제적이며 타산적이고 또 대내적이다.
그것은 여성, 즉 주부의 소임을 맡고 있는 여성은 언제나 생존의 제일선에서 어쩔수 없이 그 손과 정신에「생활의 때」를 묻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얼마동안 주부시단에 시선을 맡아오면서 무엇보다도 우선 우리 주부들이 얼마나 많이 시를 쓰고 싶어하는가 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는 곧 우리 주부들이 그들의 삶의 굽이굽이에서 많은 시적 충동과 감흥을 받고있다는 이야기도 되겠으며 아울러 그토록 얼마나 가치지향적이며, 그리고 열심히 모든 사물을 사랑하고 자기 성찰 혹은 자기확대를 위하여 애쓰고 있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그러나 시는 쓰고싶다고 해서 곧바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다.
주부시를 읽으면서 그들이 대체로 시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즉, 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 덮어놓고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감흥을 토막토막으로 말을 나누어서 늘어놓으면 시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주부들이 많았다. 또 대체로 성숙되고 심화된 사고를 거치지 않고 너무 직설적인 표현이나 영탄조가 많았고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넋두리 조로 일관되는 예도 많았다.
그리고 허황한 관념시의 나열로 그 시상의 아름다움이나 진실이 오히려 손실되는 예가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의 제재선택에 있어서 좀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생활, 즉 우리들의 생활이 주제가 되는 시를 쓰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우리가 주부시단에 거는 기대는 이와같이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현세적인 생활에 얽힌 여러가지 실감나는 이야기로서 주부가 아니면 그릴 수 없는 세계, 실로 손때 묻은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을 밝힌, 말하자면 우리의 생활과 밀착된 정서를 노래한 시일 것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시의 소재는 대단히 특수하고 높은 차원에서, 혹은 꿈같이 아름답고 낭만적인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무 것도 특수할 것이 없는 일상에 갇혀 지내는 주부들은 시의 세계란 감히 근접할 수도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의미하게 지나쳐 버리면 그만인 한 주부의 일상속에, 그냥 두면 흘러가서 소멸되어버리는 한 여자의 세월 속에, 즉 보다 더 보편적이고 구체적이며 또 생활적이고 소박한 세계 속에 담겨 있는 진실이 훨씬 더 생동력이 있고 감동적일수 있다.
문제는 자기의 삶을 얼마나 가치있는 것으로 끌어올리며 얼마나 사물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에 애착을 가지고 있느냐 일것이다.
참으로 생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한사람의 주부로서 가정을 꾸려가면서 느끼는 애환과 고뇌 혹은 깊은 좌절등이 아름다운 관념적인 언어가 아닌 일상의 언어, 우리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언어로 시화된 격조 높은 한편의 시, 주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경이로움이라든지 혹은 슬픔등이 잘 다듬어진 언어로 시화된 한편의 시, 건강한 목소리로 읊어진 한편의 시, 이러한 시를 우리 모두는 주부시단을 통하여 만나고 싶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