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경들만 희생되는 농민폭력시위 방치말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쌀 협상안 국회 비준을 반대하는 집회에서 농민과 경찰이 충돌해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엄중 대처 방침을 밝히고, 특히 화염병과 차량 방화 등 폭력 시위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책임을 묻기로 했다. 지난달 하순부터 계속 이어지며 날로 과격해지는 농민 시위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5일 여의도에서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농민대회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고 한다. 국회 쪽으로 진출하려는 시위대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농민이 충돌해 돌과 방패, 죽창과 몽둥이가 난무하는 난장판이 벌어졌다. 흥분한 농민들은 LP 가스통에 불을 붙여 전경버스를 불태웠다. 농민 100여 명, 경찰과 전경 20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니 끔찍했던 상황을 짐작할 만하다.

이번 충돌을 놓고 경찰은 '폭력 불법집회'라고 규정했고, 농민단체 등은 '살인 진압'이라고 비난하며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경찰에 대항해 죽창을 휘두르거나 화염병을 던지고, 차량을 불태우는 폭력은 용인될 수 없다.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다. 부상으로 실명 위기에 처했거나 뇌신경이 손상된 의경은 누구의 자식이며, 경찰 차량 19대가 불타거나 파손돼 입은 손실 1억여원은 누가 보상할 것인가. 폭력시위는 방치해선 안 된다. 경찰도 '최루탄은 안 쓴다'는 식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왜 젊은 전경들의 몸만 희생시키는가.

농민단체들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리는 부산에서 오늘 전국 농민대회를 열고 비준안 국회 처리가 예정된 날에는 고속도로 점거 투쟁 등을 계획하고 있다. 그렇게 폭력투쟁을 한다고 농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농촌 문제는 그만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다. 비준안 처리를 늦추면 오히려 쌀 시장 개방을 불러 농민들에게 더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이제는 한발 물러나 상식적인 선에서 해결이 돼야 한다. 농촌을 위해 도시민들이 지금까지 희생해 온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