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도시 주민들 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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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연기군 남면 진의리 입구에 행정도시 찬·반 진영에서 내 건 현수막이 나란히 등장했다.

행정도시 건설 예정지인 연기.공주 주민들은 요즘 마음이 매우 뒤숭숭하다.

헌법재판소의 '행정도시 건설 특별법'에 대한 위헌 여부 결정이 임박한 가운데 사업 시행자인 토지공사는 '합헌'을 전제로 다음달부터 토지 보상비를 지급하기 위해 감정 평가 작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군 남면 방축리 임헌진(76)씨는 며칠 전 감정 평가사들의 방문을 받았지만 감정에 응하지 않았다. 임씨는 "헌법재판소 결정도 안 나왔는데 토지 감정을 받았서 뭐 하냐"며 "지난해 행정수도 추진 때처럼 또 '위헌' 결정이 나올 지 두렵기만 하다"고 말했다.

9일 오후 3시 연기군 남면 송담리 한 수퍼마켓에서는 50~60대로 보이는 남자 4명이 간이 탁자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여기에서도 감정 평가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일행 중 한 명은 "내가 밭에서 일하고 있는 사이 평가사가 사람도 없는 우리 집을 감정하고 갔다"며 "이웃 집과 비교해 감정가가 낮으며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헌법재판소 결정만 생각하면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거액의 보상비 유치에 혈안이 된 은행.투신사 등에서는 "보상비 나오면 저희 회사에 맡기세요"라는 내용의 안내문을 주민들에게 계속 보내오고 있다.

연기군 남면사무소 입구에 있는 모 부동산중개업소 간판은 '묘 이장(移葬) 및 납골당 조성' 전문업체의 홍보 현수막으로 뒤덮혀 있었다. 서류 준비부터 이장까지 묘지 보상을 모두 책임지고 대행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또 남면 진의.양화리 마을길에는 인근 조치원의 미분양 아파트를 소개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김모(72.남면 갈운리)씨는 "보상비를 받기 전에 아파트라도 미리 한 채 사 놓으라고 권유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위헌 결정 나오면 어떡하나"라며 불안해했다. 지종대(68.금남면 호탄리)씨도"현재 주변 농지값이 평당 50여만원까지 올라 땅을 새로 살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토지공사의 의뢰를 받은 18개 감정평가회사는 지난달 21일부터 도시 건설 예정지 마을들을 돌며 보상가 산정을 위한 막바지 조사를 하고 있다. 공사는 이달까지 감정을 끝내고 다음달 중순부터 보상비를 지급할 계획이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행정도시 건설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소원 결정을 24일 내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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