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 대신 팔아주겠다"며 모조품 만든 50대, 특허소송 패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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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 공들여 만든 기계를 한순간에 도둑질 당했습니다.”

지난 2005년 10월 충북 진천 두솔메카트로닉스 두상수(55) 대표 사업장에 김 포장기계 제작업체를 운영하는 김모(52)씨가 찾아왔다. 두 대표가 2003년 김을 자동으로 절단하고 포장까지 해주는 기계를 특허 출원한 뒤 상용화 기계를 막 제작한 직후였다. 김씨는 “제가 충청권에 김 제조업체를 많이 안다. 몇 대만 주면 대신 팔아주겠다”며 두 대표를 설득했다. 이후 기계 5대를 가져갔다. 그 일이 4년 간 이어진 특허 소송의 시작일 줄은 몰랐다. 모조품이 나돌더니 매출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대법원 제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17일 김 자동가공장치를 복제해 시중에 유통한 경기도의 A업체를 상대로 두솔메카트로닉스가 낸 권리 범위 확인 특허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A업체가 지난해 11월 특허법원에서 패한 뒤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며 상고한 것을 대법원이 기각한 것이다.

두 대표가 충북 진천에 공장 기계설비 제작업체를 설립한 건 15년 전. 전동차 부품을 제작하던 그는 매출이 많지 않자 2001년부터 김 자동화 기계를 개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김을 절단한 뒤 사람 손으로 포장을 마무리하는 작업을 한번에 해주는 기계다. 그로부터 2년 뒤 특허청 특허를 내고 상용화 기계까지 만들었다. 두 대표는 “입소문을 타더니 대형 업체들이 잇따라 나서 납품 계약까지 체결했다. 매출도 첫 해 3억원에서 8억, 10억, 13억원까지 매년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러다 갑자기 2010년 매출이 7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이유를 찾기 위해 충청권에 있는 소규모 김 제조업체를 찾아가 봤다. 두 대표는 “충청권을 비롯해 경기도와 전남 지역에 있는 김 제조업체 31곳에서 내가 만든 것과 똑같은 기계를 쓰고 있어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대신 팔아주겠다며 기계를 가져간 김씨가 생각났다. 알고 보니 복사기계를 판매한 A업체는 김씨의 친척이 대표이사로 돼 있었다.

두 대표가 처음 소송을 낸 건 2010년 10월. 그는 “내 기계를 복사한 뒤 본인이 갖고 있던 영업라인에 내 기계를 왕창 팔아 치웠다”며 “영세 제조업체가 낸 특허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의 보호가 절실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번 판결과 함께 특허침해 관련 민사 소송이 마무리되는 대로 피해 보상금을 청구할 계획이다.

진천=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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