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그린 농민들의 세가지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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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추곡수매가 문제를 다룬 국회경과·농수산위 연석회의는 농민들의 각기 다른 세얼굴을 그려냈을 뿐 무엇이 참모습 인지는 더욱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정부의 설명을 들으면 우리농민은 분명 「행복한」 국민같아 보였고, 민정당의 주장에 의하면 다소 「억울한」 처지에 있고 야당의 주장대로라면 엄청나게 「불행한」 희생자 같았다.
정부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추곡가를 올리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 우리 농민들은 다른어느계층 보다도 혜택을 받고 있다. 우선 가마당 생산비가 3만8천3백18원 밖에 들지 않아 작년수준의 동결가(5만5천9백7O원) 를 받고 말아도 약 46%의 순이익을 본다는 계산이다.
또 지난 1년간 도시근로자는 가구당 5.6%의 실질소득이 증가된 반면 농민들은 12.8%를 기록했고, 소득액도 사상 처음으로 농가가 도시근로자를 앞지르고 있다.
그러나 민정당의원의 해석은 다르다. 정부가 밝힌 생산비를 인정하더라도 작년에 86만원이던 농촌가구당 평균부채액이 1백20만원으로 40%가량 늘어났고 학자금 5.7%, 각종 공공요금이 2%나 올랐으니 이 인상분은 추곡가에 반영시켜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정 값을 못 올리겠다면 수매량 (작년 7백만섬) 이라도 늘려야 농민들의 증산의욕에 부응하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민한당을 비롯한 야당측은 정부의 생산비통계 자체를 불신하고 들어간다. 단적인 예로 하루 세끼 먹이고 8천원은 주어야 일손을 구할수 있는 농촌실정을 외면한채 노임을 식대 포함해 하루6천9백47원 (남자) 으로 계산한 통계를 어찌 믿을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농민들은 저물가정책의 희생자이므로 수매가를 최소10.3% 올려 전량수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가 열린것은 바로 이같이 다른 세가지 견해를 대조, 조정해보고 합리적 접근을 해보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25일의 연석회의는 정부·여·야당 어느 한쪽에서도 진지한 노력을 엿볼 수 없는 극히 비생산적인 평행선의 모임으로 끝나고 말았다.
『국민대표인 국회의 견해를 경청하여 수매가를 결정하겠다』던 정부는 국회가 열리기 직전 농수산부장관의 입을 통해 동결불가피성을 국민에게 알렸고 의원들의 어떤 지적 앞에도 『인상 못하는 사정을 양해해달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야당은 『정부의 방침이 그러하다면 회의를 열 필요가 없다』 는데 얽매인 나머지 회의를 통해 정부논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야당논리를 세우려는 노력을 아예 포기, 지루한 공전을 통해 서툰 「투쟁상」 을 부각시키려는데 급급했다.
그러다보니 국회는 농민을 대변하는 유용한 장소가 아닌 것 같다는 씁쓸한 뒷맛만 남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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