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광주시민들… '보이지 않는 손' 작용 의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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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최대 지원세력이었던 광주와의 관계가 계속 꼬이고 있다. 盧대통령이 "참여정부 탄생 역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덕분"이라는 메시지를 가지고 5.18 제23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려다 대학생들에 의해 봉쇄당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대북 비밀 송금에 관한 특검 수사 수용 직후 나타나기 시작한 광주 민심의 참여정부 이탈 조짐은 지난달 행정자치부 등 중앙부처 고위직에 대한 인사가 단행된 뒤 호남 소외론이 고개를 들 때만 해도 소수의 인식으로 치부되었다. 당시 '광주 민심 이탈'에 대한 언급은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인사들의 부풀리기란 주장이 설득력을 가졌다.

그러나 정치개혁을 표방한 신당 추진이 본격화하면서 민심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신당 추진이 많은 시민에게는 '민주당 부정 및 호남 배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당 추진의 배후에는 노심(盧心)이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다.

나라종금 사건과 관련해 한광옥(韓光玉)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구속되고 김홍일(金弘一)의원을 비롯한 호남 출신 의원들에 대한 소환 계획도 현 정권에 대한 광주의 여론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민주당 광주시지부 한 당직자는 "신당 추진과 나라종금 사건 수사가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든 각본에 따른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당원과 시민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盧대통령이 이번 방미에서 보여준 언행도 광주 민심의 이탈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1980년 5.18 민중항쟁이 발생한 지 23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광주 사람은 당시 미국의 태도와 역할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盧대통령은 집권 이전만 해도 대미 인식에서 어느 정치인보다 광주와 코드가 맞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 방미 활동에서 보여 준 盧대통령의 대미 자세는 광주 시민들로서는 아무리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란 목적을 십분 감안해도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광주 경실련의 한 간부는 "국민의 정부가 5년 동안 지켜온 대북.외교 원칙 등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물론 이날 5.18묘역에서 盧대통령에 대한 대학생들의 거부 시위를 광주 대다수 시민의 뜻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다른 곳도 아닌 광주에서, 그것도 '5월 18일'에 이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는 점을 청와대와 참여정부 핵심 관계자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광주=이해석.구두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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