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윤정모의 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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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윤정모씨의 신작 장편소설 『섬』은 읽는 이로 하여금 흐릿한 잠에서 깨어나 정신이 번쩍 들도록 만드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게 한다. 이판사판 겅정거리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바닥에서 이처럼 제할 일을 하는 소설가가 있고, 우람한 세계를 드러내는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한 알리고자 하는 것의 보람은 작은 것이 아니다.
더구나 그 자신 규수 작가이기는 하지만 「여류」를 붙이지 아니하는 문학,「문단」속에서의 문학이 아니라 역사 사회속에서의 문학을 추구해온 작가정신의 응축을 이 신작 장편소설에서 치열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일본 식민시대의 설움 많은 문둥이와 천형의 섬 소록도를 소재로 한 것이지만 소재주의를 뛰어넘고 있다. 우리의 삶의 기막힌 뒤안길의 역사가 「신사병」이라는 문둥이들의「일제시대 수난사」를 통하여「과연 우리는 누구인가」를 되묻게 하고 있다.
「싸우면서 쟁취하는게 아니라,지키기 위해 싸워야하는」처지에서 벗어나려는 나환자들의 인간적 자각은 곧 우리 시대의 자각이기도 할것이며 『섬』이 아닌 대륙을 찾으려는 이들의 정신적 항일성은 우리의 문학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시사한다.
소설 자체로 「대하」는 아니지만,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담겨진 윤정모씨 문학은 육중하게 우리에게 다가선다.
이소설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사실은 작가인 윤정모씨가 이 소설을 쓰기위해 치밀한 취재를 한 것으로 그의 작가적 성실성을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다. <한마당간·2백10페이지·2천원>
박태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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