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왜 7만원은 없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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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만원 '장기집권'

물론 결혼식에서 1만~2만원을 내놓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벌써 까마득한 얘기. 10여 년 전에도 정액은 3만원이었다. 최근에야 5만원이 그 '왕좌'를 빼앗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2001년까지만 해도 평균 결혼 부조금은 3만6000원이었다. 그러나 올 초 조사 때는 4만2000원을 기록, 5만원 쪽으로 기울었다.

이런 3만원의 장기집권 원인을 주 원장은 "한국인이 숫자 3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 민족은 3과 인연이 깊다. 단군신화에만 해도 '삼부인' '삼신' 등 숫자 3이 여러 번 등장한다. 고구려를 상징하는 새는 '삼족오'였고, '삼재팔란'을 물리친다는 부적에는 '삼두매'가 그려져 있다. 이 밖에도 우리 민속에서 3의 등장은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주 원장은 "이렇게 유난스러운 '3사랑'을 키워오다 보니 경사에 3만원을 내는 것을 무의식 중에 자연스러운 일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4만원 '실종사건'

그러나 물가는 계속 오르고, 덩달아 결혼식장 밥값도 뛴다. 부조금도 3만원에 머물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최근에 '다섯 장짜리'가 부쩍 늘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이 석연찮다. 3 위에 버젓이 4가 있는데, 왜 5로 뛴단 말인가. 물론 4만원의 실종에 대해 누구나 댈 수 있는 추측이 있기는 하다. 숫자 4의 독음이 죽음을 뜻하는 한자 '死(사)'와 같아 사람들이 피했으리라는 것. 그러나 주 원장은 이 얘기를 동아시아권의 홀수 선호 문화까지 끌고 간다. "한.중.일 삼국은 예로부터 홀수를 좋아했다. 우리 민족이 3이란 숫자를 사랑하는 것처럼, 중국인들은 5를 좋아한다. 이런 홀수 선호의 배경에는 음양오행설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홀수로만 이뤄진 5월 5일(단오), 7월 7일(칠월칠석), 9월 9일(중양절) 등을 길일로 기린 것이 그 증거다. 부조금이 3만원 다음에 5만원으로 뛴 것도 이런 문화적 맥락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 '10만원 시대'는 언제

곧 닥쳐올 '5만원 기본시대'. 생각만 해도 허리가 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포스트 5만원 시대'다. 요즘 분위기대로라면 5만원 다음 타자는 10만원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벌써 결혼식에서 6만~9만원짜리 봉투를 내봤다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이런 불길한(?) 조짐에 대한 주 원장의 분석과 주장은 이렇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10진법'을 아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5 위 숫자 중에선 10을 가장 선호한다. 그래서 차라리 5만원을 내면 모를까 7만원이나 8만원을 내면 10만원을 내려다 아까워 몇 장 뺀 것 같다는 인상을 주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에 '그렇게 생각할 테면 하라지'라고 대범하게 생각할 수 있는 한국 사람은 많지 않다.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허세는 좀 버릴 필요가 있다. 언젠가는 부조금 10만원이 평균이 되는 때도 오겠지만, 그 전에 7만원 정도의 '중간 기착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여러 문화권에서 7은 행운의 숫자로 꼽힌다. 결혼과 행운.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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