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약관의 이만기가 씨름계의 「천하장사」가 되었다. 봄에 열렸던 1회 대회에 이은 2연패다.
몸집이 훨씬 큰 1백15kg의 거구를 3대1로 누른뒤 두팔을 번쩍 치켜들고 씨름판을 돌며 기뻐하는 「천하장사」의 모습이 장하다.
「천하장사」는 전국의 씨름판을 휘어집은 역사의 새로운 이름이다.
하지만 옛날엔 보통 씨름판의 제일가는 씨름꾼을 장사라고 했다.
조선시대대엔 도결국이라고도 했다. 단오날 서울남산의 왜장이나 북악산밑 신무문 뒤에서 겨루던 씨름의 최종우승자도 도결국이었다. 그뜻은 「판막음」. 그 씨름판에서 제일 힘이 세고 손이 빨라 연전연승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때의 씨름은 지금처럼 토너만트식의 겨룸이 아니었다. 연전연승하는 씨름꾼에게 도전하는 역사가 더이상 나오지 않으면 판막음이 됐다.
한국씨름의 역사도 꽤 오래다. 고구려 고분인 각저총의 주실 벽화로 그려져 있는 씨름모습으로도 그걸 알수 있다.
그 고분은 기원4세기께 조성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문헌상의 씨름 기록은 『고려사』 충혜토조.
왕이 정무를 신하에게 맡기고 날마다 내수와 씨름하여 위아래의 예가 없었다는 기록이다.
왕은 씨름구경도 좋아했지만 직접 씨름을 즐긴 모양이다. 그때의 씨름꾼은 용사라고 했다.
우리 씨름은 중국에 전해져 고려기라 불렸다.
그러나 그건 씨름 그 자체가 아니고 씨름의 기법. 알려진 고려기중엔 내국 (배지기), 외국(등지기), 륜기 (딴죽걸이)가 있다.
씨름자체는 중국에서도 오래전 부터 유행했다. 『사기』 이사부에는 송나라 2세가 감천궁에서 각저와 배우놀이를 베풀었다고 전한다.
고려의 충혜왕처럼 황제자신이 씨름을 즐긴 경우도 있다.
후한의 장종은 젊어서 씨름을 좋아했다. 내기씨름을 해서 이존현에게 한 진을 주고 위용절도사로 삼았다.
일본에서도 씨름이 온나라를 뗘들썩하게 하고 있다. 프로 스모(상박) 다.
그 상박의 기원은 기록상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있다.
『일본서기』에는 황극천황원년(서기 6백42년)에 백제 사신 대좌평지적을 맞아 조정에서 향응을 베풀고 건장한 사나이들로 씨름을 하게했다고 전한다.
그것이 일본궁정 씨름의 시초요,또 일본 상박경기의 시원이다.
물론 일본의 스모는 우리의 씨름과 방식이나 기법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 씨름도 왼씨름, 바른씨름, 띠씨름이 전해오다 샅바 왼씨름으로 통일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천하장사씨름의 회오리가 전승민속을 살리며 온 겨레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자못 뜻깊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