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야채장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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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매일같이 들르는 시장 한모퉁이에 어찌보면 총각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아저씨같은 채소장수가 있다.
그 자리는 장사가 잘되지 않는곳인지 자주바뀐다. 얼마전에는 튀김장수 아주머니가 튀김을 팔았는데 한달전부터 이 아저씨가 채소를 팔고있다.
다른 부식가계보다 약간 싼 느낌이 들어 어째서 그렇게 싸게 파느냐고 물었더니 직접 가까운 김해에 채소밭을 갖고있기 때문에 다른 집보다 싸게 낼수 있다고했다.
그런데, 그 아저씨를 새삼스레 멋장이라고 불러준데는 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배추·무우·호박·고추등의 야채들이 널려있는 좌판 위에 다른 가게보다 하나 더 놓여있는것이 있다. 책이 가득담긴 플래스틱 소쿠리가 그것이다.
큰길가의 시장이라 오가며 지나치게 된다. 그때마다 비교적 한가한 오전에는 항상 책을 읽고있는 아저씨를 쉽게 볼수있다. 비록 손은 험한 일로 거칠대로 거칠고 시커멓게 그을은 얼굴은 볼품이 없지만 언제다 책과 함께 있는 아저씨가 정말 멋있게 보였다. 그래서 멋장이 아저씨라 붙여준것이다.
어제는 오이를 사면서 물었다.
『아저씨, 책을 좋아하시는가 보죠. 재미있는 책이 있으면 좀 빌려주세요』했더니, 책이 담긴 소쿠리를 건네주면서 읽을만한 책이 있으면 빌려다 보라고 한다. 수기집·수필집·월간지등의 책 에서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의 수필집이 눈에 띄어 고맙게 빌어 볼수있게 되었다.
항상 책을 멀리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들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차일피일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종일을 손님들에게 시달리면서도 책을 대할수있는 아저씨가 부럽기만 하다.
낯선 고객에게 선뜻 자신의 아끼는 책을 빌려줄수 있는 아량과 땀흘려 농사지은 야채를 팔아서 한권의 책을 살수 있는 마음의 풍요와 바쁜 시간을 쪼개 한줄의 책을 읽을수 있는 채소장수 아저씨야말로 진짜 멋쟁이가 아닐까.
나갑순<부산시 북구 덕천동 427의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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