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4.4%는 꺼지기 쉬운 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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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제성장률은 지난 1분기 2.7%, 2분기 3.3%에 이어 이번 분기에는 1년 만에 4%대의 성장률을 회복했다. 경제성장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경기회복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3분기 경제성장률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는 점은 그동안 위축되었던 민간소비가 4.0% 증가하여 11분기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민간 경제 주체들의 자신감 회복 가능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외에도 수출이 13.5% 증가하여 경기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주목받은 소비증가율 수치는 조심스럽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3분기 민간소비증가율이 전년 동기에 비해 높게 나타난 이유는 비교 대상이 되는 지난해 3분기의 민간소비가 0.8% 감소했던 요인이 크다. 계절적인 요인을 제외하면 올해 3분기의 민간소비는 2분기에 비하여 1.2% 증가했는데, 이는 1분기 대비 2분기의 증가율 1.4%보다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이번 분기의 민간소비 증가를 본격적인 소비회복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근거다.

3분기 성장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이번 발표를 계기로 한국경제가 추세적으로 경기상승 국면에 돌입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듯이 최근 동향은 추세적인 하강 국면에서 일시적인 반짝 상승 국면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중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국경제는 2000년 8월의 경기 정점 이후 소폭의 상승과 하락 국면을 반복하고 있다. 경제성장률로 판단할 때 2002년의 상승 기간이 있었지만 1년여 만에 하락 국면으로 돌아섰다. 2003년 말과 2004년 초에 걸쳐 반짝 상승 기간이 있었지만 이 또한 1년 반을 넘기지 못했다. 경기의 상승 기간이 과거에 비해 짧아졌으며, 또한 반짝 경기 상승기 내에서도 경제성장률의 최고치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산에 올라가다가 중간에서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다가 이번에는 중간에도 못 미쳐 내려오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의 경기상승도 하락 추세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속적인 경기상승을 담보할 수 있는 설비투자증가율은 여전히 경제성장률을 밑돌고 있으며, 최근 5년여 동안 두 자리 숫자의 증가율을 기록한 적이 없다. 신용불량자 문제가 최악의 고비는 넘긴 것으로 판단되나 가계부채 문제와 고용불안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 민간소비의 근본적인 추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자리 창출을 동반하지 않은 경제성장, 기업소득과 개인소득이 양극화되는 경제 구조를 감안하면 민간소비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개인들의 소득 증가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경쟁국들의 무서운 추격을 감안하면 수출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기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결국 이번의 경기상승도 추세 변화로 해석하기 어려움을 알 수 있다.

내년도에는 경제 환경을 둘러싸고 있는 정책 및 정치 환경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은 변화가 없는 가운데, 내년부터 본격화될 정치의 향연에서 지뢰의 뇌관을 잡고 있는 일부 정치인의 포퓰리즘 행태는 극에 달할 것이다. 더욱이 한반도를 뒤덮을 개헌 논쟁에서 기업들은 또다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에 볼모로 내몰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3분기의 경제성장률 상승은 한국경제에 커다란 불길을 일으킬 수 있는 소중하지만 꺼지기 쉬운 촛불이다. 이를 지키기 위한 국민 모두의 각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