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 국토부 … 호남KTX 노선도 못 정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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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지역 광역·기초의원들이 2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호남고속철도 서대전역 경유 반대집회를 열고 있다.(왼쪽) 대전 지역 시민단체들이 지난달 30일 서대전역에서 KTX 경유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2일 오후 대전시 서대전역 광장. 시민 200여 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서대전역 경유, 대전·호남 상생한다’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서였다. 이들이 주장하는 골자는 새로 개통하는 호남고속철도(KTX)가 서대전역에 최대한 많이 정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시각 전북 익산역에서는 전주·익산·남원 등 전북 지역 5개 시의 시장과 부시장이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호남KTX를 저속철로 만드는 서대전역 경유는 안 된다”는 게 성명서의 골자였다.

 호남고속철도(KTX) 운영 방안을 둘러싼 진통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서대전역 정차 횟수를 늘려야 한다는 대전 지역과 최소로 줄여야 한다는 호남 지역의 주장이 팽팽이 맞서고 있다. 이로 인해 다음달 초였던 호남KTX 개통 예정일이 4월 초로 한 달 늦춰지기까지 했다.

 현재 KTX 호남선은 경부선과 호남선이 갈라지는 회덕분기점부터 KTX 전용선이 아닌 옛 호남선 철도를 사용한다. 그러면서 서대전역을 거친다. 전용선이 아닌 옛 철도를 쓰기 때문에 속도가 느리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KTX를 타고 2시간40분이 걸린다. 서울~부산과 비슷한 시간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 국토교통부와 코레일은 충북 오송역에서 익산을 지나 광주로 가는 전용선을 건설했다. 4월 개통하는 호남KTX가 이 위를 달리게 된다. 새 전용선은 서대전역을 거치지 않는다. 그래서 개통을 앞두고 지난해부터 서대전역 이용자들이 반발했다. KTX 호남선 서대전역 이용객이 연간 179만 명(2013년 기준)으로 광주송정역(122만 명)보다 많은데 서대전을 건너뛰는 게 말이 되느냐는 논리였다.

 코레일은 나름대로 호남과 대전 이용객들의 편의를 고려한 호남선KTX 운행계획을 만들어 지난달 15일 국토교통부에 제출했다. 하루 82편 호남선KTX 중 18편은 서대전역을 지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서대전역을 지나는 KTX는 회덕부터 익산까지 옛 철로를 이용한 뒤 익산에서 다시 새 철로를 타게 된다.

 이런 계획에 이번엔 호남이 반대하고 나섰다. 하루 18편 ‘저속철’이 생긴다는 이유였다. 전용선을 타면 용산에서 광주송정역까지 1시간33분에 가는데, 서대전에서 익산까지 옛 철로를 사용하면 이보다 43분 늘어난 2시간16분이 걸린다는 이유였다. 이런 반발에 코레일은 서대전역 경유를 하루 16편으로 줄인 수정 운영계획서를 냈다. 여론 수렴이 더 필요하다며 개통 시기도 4월로 늦췄다.

 하지만 여론 수렴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호남과 대전의 입장 차이가 워낙 커서다. 호남은 서대전역 정차가 아예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고, 대전은 호남KTX 중 50%가 서대전역을 지나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호남 지역 광역·기초의원 250여 명은 2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서대전역 경유 반대집회를 연 뒤 청와대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이들은 청와대 앞에서 의장단 1일 릴레이 시위를 이어갈 예정이다. 대전에서는 3일 시민집회가 예정돼 있다.

 결정권을 쥔 국토교통부 역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2006년 만들어진 호남KTX 건설 계획에 따르면 서대전역 경유는 애초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코레일이 실제 운행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경제성 등을 이유로 새롭게 추가됐다.

 국토교통부는 서대전역에 하루 몇 차례 서느냐가 아니라 서대전역을 경유할 지 말 지조차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손병석 국토부 철도국장은 "철로를 새로 깔았다고 모든 열차가 신선으로 다녀야 한다는 원칙은 없지만 당초 호남선을 도입한 취지도 살려야 하기 때문에 양측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며 “의견을 모아 늦어도 2월 중순까지는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신진호·최경호·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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