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부모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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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향은 경기도 평택.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부모형제를 찾습니다 맹정진(39)』
32년전 큰아들을 잃어버린 홍현표씨(64·상업 서울금호동2가433)는 강동아파트에 사는 둘째며느리 장혜경씨 (32) 로부터 TV에 아들이 출연한 것같다는 귀뜀을 받았다.
아들의 생사를 알수 없을까 애태우던 홍씨는 며느리로부터 성도 이름도 다른 우씨의 전화번호를 메모받아 다이얼을 돌렸다.
홍씨가 기억하는 어릴때아들의 특징은 머리의 「쌍가마」 와「우물가슴」뿐이었다.
맹씨는 전화에서 자신의머리에 「쌍가마」가 있고 어릴때 평택에서 자랐으며 남동생이 있다는 것밖에 모른다고 했다.
홍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맹씨를 서울로 불렀다.
서울장충체육관 매표소앞에서 맹씨를 처음 본 홍씨는 다짜고짜 맹씨의 가슴을 열어젖혀 「우물가슴」인가를 확인했다.
「우물가슴」은 틀림없었으나 이러한 사실만 가지고 「아버지와 아들이란 관계로 단정, 얼싸안을수도 없었다.
서먹서먹하게 서로 쳐다보고만 있다가 KBS측의 배려로 고려대부속병원을 소개받아 지문·골격·혈액·타액검사등 5가지에 걸쳐 친자확인 검사를 받았다.
초조하게 판정을 기다린지 이틀째 되던 지난 11일 홍씨와 우씨는 병원측으로부터 「틀림없는 부자(부자)관계」임을 통보받았다.
『성문아-.』
처음으로 큰아들의 이름을 목메어 부른 홍씨는 맹씨 아닌 「홍성문」의 손을 붙잡았고,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머니 김사례씨(61)도 KBS중앙홀에서 아들을 보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들이 헤어진 것은 51년 1·4후퇴때.
황해도 연백이 고향인 홍씨는 어머니 김씨와 동생성태씨 (당시 2세) 를 고향에 남겨둔채 성문씨 (당시6세) 만 데리고 평택으로의 피난길에 올랐다.
평택에 도착한지 며칠 안돼 홍씨는 제2국민병으로군에 입대하게됐고 성문씨는 평택 성심보육원에 맡겨졌다.
성문씨는 국민학교를 졸업한뒤, 18살되던 해 목수일을배워 고아원을 나왔다.
천안·성환등 충남도일대를 전전하며 건축공사장과 농사일 막노동 등을 해오며 생계를 이었다.
지난 69년 충남 아산에서 농사일에 종사하던증 같은 마을의 문이쁜씨 (34) 와 결혼, 딸 셋을 두었다.
휴전후 서울에서 부인 김씨와 작은아들 성태씨를 만난 홍씨는 한동안 큰아들을찾아 헤매다가 전쟁의 와중에서 죽었을 거라고 판단, 아예 포기했었다.
32년만에 부모를 만난 성문씨는 그동안 주위에서 고아라고 부르던 설움, 결혼식때 돈이 없어 찬물을 떠놓고 부인과 사랑을 맹세하던 일, 지난70년 교통사고로 8개월간 병상에 누워 피어오르던 부모에 대한그리움이 한꺼번에 복받쳐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성문씨는 어린애처럼 들뜬 모습으로 「이제야말로 큰아들노릇 해보겠다』 고 말했다.<방원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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