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접촉론의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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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에서 「재야의 소리」의 형식을 빌어 머리를 들고있는 소위 「남북한 교차접촉론」이 교차승인과 자주 혼동되고 있는 것은 경계할만한 사태라고 하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련과 중공이 한국을, 그리고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외교적으로 승인한다는 교차승인은 그 효력을 가지고 보면 일종의 협정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남북대화가 북한의 반대로 벽에 부닥친 상황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극소화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차선책을 남북한교차승인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차승인은 때가 이르다는「판정」을 받았다. 「레이건」행정부가 교차승인에 전혀 흥미가 없기 때문이다. 흥미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뚜렷한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헤이그」장군이 인터뷰에서 자신은 교차승인에 반대한다고 주저 없이 선언한 것은 바로 그가 국무장관으로 봉직한 「레이건」행정부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다.
교차승인은 시기상조라고 우리가 「이해」한 것도 그런 미국의 입장을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
이런 시기에 미국의 의회증언에서 한국과 중공문제에 정통한 두 사람의 학자들이 한국이 소련 및 중공과 교역을 하면 미국도 북한과 교역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른바 교차접촉의 한 형태다.
교차승인이 얘기될 때 그 전 단계로 교차접촉이 선행되어야한다는 주장은 지금까지 자주 나왔다. 우선 듣기에 제법 그럴듯한 논리같다. 그러나 교차승인의 선행 조건으로서의 교차접촉에는 큰 함정이 있음을 알아야한다.
그 함정의 정제는 간단하다. 교차접촉론자들은 한국은 이미 소련 및 중공과 접촉을 하고있고 간접적이나마 상당량의 교역을 하고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북한과의 교류론과 교역론이 머리를 드는 것이 작년에 소련의 언론인·관리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올들어서는 중공민항기사건이 일어난 것과 무관하지는 않은 것 같다.
미국·일본의 정계·학계·언론계, 그리고 심지어는 정부 일각에서 한국이 미국과 일본의 손발은 묶어놓고 소련·중공과 접촉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는 불만의 소리를 우리는 듣고있다.
미국은 한국의 참여없이는 북한과는 어떠한 협상도 하지 않겠다고 거듭 약속해 놓고 있다.
교차접촉론이 활발해질 경우 협상과 접촉은 별개의 것이라는 전제로 미국·북한접촉은 한국의 참여나 양해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을 전혀 예상않올 수도 없다.
미국과 일본의 국내정치 사정의 변화여하에 따라서는 교차접촉론이 현실적인 심각한 문제로 우리 앞에 부각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북방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동시에 교차승인의 선행조건으로서의 교차접촉론에도 대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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