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식품안전대책 맞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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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김치의 유해성 논란이 있는 데다, 불과 이틀 전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식품 안전 문제에 대한 대책이 추상적이고 총론적이며 원론적인 것을 반복하는 보고에 그쳐서는 곤란하다"고 질타한 시점이었다. 더구나 이날 오전 국내산 양식 송어.향어에서도 발암 의심 물질인 말라카이트그린이 검출된 것으로 밝혀져 먹거리 안전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런 상황에서 식의약청장이 직접 브리핑한다니 뭔가 굵직한 내용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 기자들이 브리핑 룸을 가득 메웠다.

김 청장은 그러나 송어.향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준비된' 브리핑을 시작했다. "지난달 여러 부처가 합동으로 내놓은 '수입식품 안전관리 개선 대책' 가운데 식의약청이 추진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으로 이미 정밀 조사에 들어간 김치를 포함해 고춧가루.된장 등 9개 품목을 다음 주부터 정밀검사하겠다고 설명했다. 조사 결과 "유해 우려가 제기되면 평가가 완료될 때까지 생산과 수입.판매를 잠정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뿐이었다. 검사 대상 식품과 유해 물질 항목을 단계별로 확대한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확대 기준이나 일정 등은 없었다. 이날 대책 중 식의약청이 강조한 부분은 '유해 우려가 제기되면 생산.수입 등을 잠정 금지하겠다'는 내용인데, '유해 우려'라는 문구의 의미도 모호했다. 김치 등 정밀검사 대상 9개 품목에 대해 조사하겠다는 유해 물질의 경우 '어느 정도 포함되면 유해가 우려되는지' 기준조차 아직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김 청장은 "선진국처럼 유해 물질 위주의 중점검사체계로 바꾼다"는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얘기만 되풀이했다.

한국에 식품을 수출하는 업체가 밀집된 지역에 현지조사단을 파견하거나 현지 영사관에 식약관을 추가로 내보내는 계획 등도 이미 발표된 내용들이었다. 이날 김 청장의 갑작스러운 브리핑은 대통령의 호통 때문에 부랴부랴 마련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식의 알맹이 없는 브리핑만 반복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먹거리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수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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