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구·지운영·홍림…그림으로 항일한 화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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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망하고 가치관은 흔들렸던 근대기에 화가들은 자신이 사는 모습 그대로를 드러낸 그림을 내놓았다. 한국 화단에서 친일 문제는 아직 청산해야 할 숙제로 남아있지만, '근대 회화 명품'전에 걸린 그림들 속에서 항일과 친일의 흔적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소림모옥(疎林茅屋;성긴 숲 초가집)'의 화가 윤용구(1853~1939)는 벼슬이 이조판서에 올랐던 선비였으나 한일합방 뒤 작위를 거절하고 서화와 바둑에 몰두하며 세상과 거리를 두었다.

간결하고 무심한 붓질로 쓸쓸한 강변의 성근 나무와 조촐한 초가집을 그린 화가는 추사체를 이어받은 빼어난 필체로 그림의 품격을 높였다. 나라 잃은 자의 슬픔이 작은 거룻배에 담겨 흐른다.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애국활동을 펼쳤던 지운영(1852~1935), 일본을 배척하는 활동으로 '홍대장'이란 별명을 얻었던 문인화가 홍림(1882~?), 배일(排日) 정신이 굳었던 이도영(1884~1933) 모두 붓을 들어 항일했던 서화가들로 이번 전시회에서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이에 비하면 황철(1864~1930)의 '해산추범(海山秋帆:해산의 가을 돛배)'은 도안적인 감각과 장식적인 취향이 강해 첫 눈에 일본화 냄새가 물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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