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연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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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9개 국어연구학회가 「국어 연구원」설립을 당국에 건의한 것은 그 동안 혼미를 거듭했던 어문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한가 될 것이다.
국어학자들은 이 건의에서 한글연구와 표준말 연구 등 본래의 연구기능뿐만 아니라 표기법통일이나 국문전산기계화문제 등 당면한 문제의 정책자문까지 할 수 있도록 국어연구원의 기능을 확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이 기구를 총리직속으로 설치, 정책의 효율적 직행을 보장할 것도 주장하고 있다.
건국 후 지금까지 우리 어문정책의 방황은 새삼 들출 필요도 없지만 그 때문에 생긴 실생활에서의 폐단은 적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맞춤법 표기가 아직도 정립되지 않아 부분적으로 틀리게 적고 있으며 국·영문 혼용도 혼돈을 빚어 젊은 세대의 지적 성숙도는 예전보다 뒤떨어진 느낌조차 주고 있다.
국어연구원의 설립은 이 같은 폐단을 불식할 권위 있는 국가차원의 연구기관이 될 것으로 보아 그 설립에는 일단 찬동하자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
그러나 국어연구원의 설립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또 여기서 결정하는 우법적 해석을 실생활에 강제 적용해야된다는 생각은 일단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다.
국어연구원을 총리직속으로 설립하자는 견해의 근저에는 여기서 결정된 정책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강력한 집행력을 학보하자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우리가 우려하는 바는 이 기구에서 한글전용정책 같은 실생활과 괴리된 어문정책을 또 다시 강요할 때 과연 국민들은 얼마나 당혹 감을 느낄까 하는 문제다.
따라서 소속이야 어디로 되든 국어연구원의 1차 적인 기능은 우리말의 연구에 있다. 연구결과를 졸속하게 정책에 반영하려는 조바심은 또 다른 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것이다.
말과 글은 시대와 역사의 산물이며 사람들의 정신이나 생활과 더불어 발전하는 것이다. 국어연구의 참 기능은 말의 생성을 뒤쫓아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어떤 인위적인 틀을 미리 마련해서 여기에 뜯어 맞추려는 노력은 필요 없다.
물론 우리 어문정책의 혼란은 이 같은 선진적인 통제에 원인이 있다기 보다는 기왕 있는 문법체계조차 상이한 해석을 내리는데 있다. 따라서 맞춤법, 표준말, 외래어 표기, 로마자화 등 실용적인 연구에 앞서 우리말의 문법부터 통일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논리적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서양언어의 문법보다 우리말의 문법이 다소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논자마다 의견을 달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의견불일치가 그대로 학교나 사함에 노출되면 어문생활의 혼란은 극복되기 어렵다.
국어연구원이 설립되면 이 같은 기초연구 외에도 실질적 효용을 가진 연구로서 우리말의 어원연구, 사라지는 우리말의 보존, 고운말·좋은 말의 개발, 영자를 사용안해도 같은 뜻을 나타내는 우리말을 찾아내는 연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국어생활은 좀 더 풍성하고 윤택하게 될 것이다.
흔히들 국어를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나라의 표본으로 프랑스를 꼽는다. 그 나라에선 한 단어를 추가하기 위해 수십 년을 연구하며 기다린다고 들었다.
결국 국어의 연구는 세월과의 싸움이며 어느 한때에 획기적 발전을 이룩한다는 것은 이제는 있을 수 없다. 그 만큼 국어학자들의 연구열, 집념, 신중은 높이 평가해야하며 국어를 아끼고 발전시키는 모든 국민들의 정성이 여기에 가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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