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정보 훔치는 보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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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회사원 金모(32)씨는 최근 보험회사에서 난데없는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L보험사 영업사원이라고 소개한 상대방이 "자동차보험 만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우리 보험사에 가입하세요. 좋은 조건으로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金씨가 "도대체 휴대전화 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느냐"고 따지자 보험사 직원은 "보험개발원에서 관련 정보를 제공받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보험개발원은 "고객 전화번호는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이를 보험사에 제공하느냐"고 해명했다.

본지 취재 결과 일부 보험사 및 보험대리점이 불법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해 영업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아르바이트 직원들을 고용해 지나가는 차량 번호를 적어오게 한 뒤 차량 소유주의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해 두고 자동차보험의 만기가 다가오면 전화를 걸어 보험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 차량번호를 알면 보험사마다 부여된 고유번호(ID)를 이용해 보험개발원의 전산망에 접속, 차량 소유주의 이름.주민등록번호와 보험의 만기일을 알 수 있다.

보험개발원에서 개인정보를 보험사에 제공하는 것은 보험사들이 자동차사고 경력 등을 확인해 보험료를 계산하는 기초자료로 쓰도록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보험료 계산 이외에 고객 유치 목적으로는 쓰지 못하게 돼 있다.

전화번호는 114 안내와 비슷한 인터넷 사이트의 전화번호 안내나 불법으로 취득한 정보를 통해 확인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J보험사 대리점 대표 孫모씨 등은 이런 식으로 10만여건의 고객 정보를 빼내 영업하다 최근 경찰에 적발돼 입건됐다.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은 "텔레마케팅을 하는 회사들이 자기네 고객의 정보를 다른 회사와 돌려보는 식으로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경우도 있다"며 "구체적인 불법 영업 수법에 대해 보강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신달수 보험검사국장은 "불법 개인정보를 이용한 보험 영업은 한두 개 보험사 만이 아니라 업계 전반에 퍼져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申국장은 "개인 전화번호는 암시장에서 불법으로 돌아다니는 신용카드.백화점카드 회원 정보 등을 통해 사실상 공개돼 있는 상태"라며 "최근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지침을 각 보험사에 내려보냈으며 앞으로 지침을 잘 지키는지 중점적으로 감독하겠다"고 말했다.

보험사의 한 관계자는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영업하는 콜센터가 불법으로 돈을 주고 산 개인정보로 영업하는 경우도 있다"며 "구체적인 정보 입수 방법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콜센터 직원이 다른 회사로 옮기면서 자기가 관리하던 고객정보를 통째로 들고 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금감원은 보험사들이 보험개발원 전산망에 접속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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